연로하신 아버지는 잉여인간이다.
나라를 위해 독립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월남전에 참전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영향력있는 글을 쓴 것도 아니고 남의 목숨을 구해준 일도 없다.
고작 한 일이라고는 평생을 마누라 고생시키고 자식만 셋을 낳아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한채
그렇게 늙어가고 있는 평범한 늙은이이다.
그 잘난 서울대 교수가 내지른 말에 의하면 우리 아버지는 그냥 숨만 쉬다가 죽어야 한다!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뭐든 삐딱하게 의문을 가져야 정상이고
기존 질서에 순응하면 한심한 얼간이고 비판적이고 신사고를 하는 축이어야 존경받는다.
서울대까지 나와 교수 노릇을 하고 있으니 그 부모가 얼마나 잘 키웠는가.
그러니 그의 부모는 당연히 잉여인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시골서 초라하게 늙어가고 있으면서 멀끔히 노인 연금이나 받아 챙기는 것을 한 달의 낙으로 여기며
그 돈 받아 담배 몇 가치 사서 피고 손자들 보잘것 없는 불량식품을 몇 개 사주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는
내 아비는 진짜 잉여인간이다. 훌륭한 서울대 교수의 말에 의하면 말이다.
뿌리 없는 나무가 어디 있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니 부모 내 부모 할 것 없이 고생스런 시대를 살면서
정치판에 휘둘리고 공권력에 휘둘리고 대기업 붖들 손에 휘둘리면서
살아가느라 허리가 휜 것은 재벌집 아니고서는 다 거기서 거기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그들을 잉여인간이라고 한다.
의미를 아무리 희석시키고 이해하고 본다고 해도 그 말 자체는 쉽게 해서는 안되는 말이다.
배운 사람이라 말 한 마디에 속깊은 사고를 담았다고 해도 일반인들이 받아들이는 요령을
짐작해야만 가르치는 사람의 인품이 드러나는 버이다.
그를 두고 좌파니 우파니 따질 것은 아니다.
말 실수는 누구나 하되 해야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는데 말이다.
내 아버지가 그의 말에 의하면 딱 잉여인간인 것처럼 느껴지니
오늘 밤의 비애는 잠을 못 이룰 지경이다.
그래, 그는 역시 몇 십년 후면 그 잉여인간의 틀에 들어간다.
그는 사회적 비용의 혜택을 과감히 거부하기 바란다.
보다 의미 있고 막중한 사회적 공헌을 하는 것으로 자기 말에 대한 책임을
다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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