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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장애 ADHD증후군을 인정못하는 엄마들

오션지 2011. 1. 15. 14:58

세상에 자기 자식만큼 귀한 존재가 따로 있을까.

금을 준들 은을 준들, 자식과 바꾸자면 바꿀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것도 대한민국 우리 나라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그 이유는 따로 답이 있는게 아니다.


내가 아이들에게 가끔씩 물어본다.

정말 우문 중의 우문이긴 하지만 

"아빠 사랑해?" 라고 물어보면

우리 막내 공주님이 대답하기를,

"어, 사랑해"

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대한민국 아빠는 몇 없을 것이다.

"왜 사랑해?"

라고 멍청하기 그지없는 참, 부담스러운 질문을 던지고 만다.

"어....그냥 아빠니까"

라고 하는 매우 현명한 답이 딸래미 입에서 나오고 나서야

뭔가에 만족한듯 미소를 짓게 되는게 아빠의 입장일 것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딱히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뱃속에서부터 발길질을 하며 꼼지락거리는 생명체를 느끼기 시작해서부터

해산의 고통을 느끼며 탄생시킨 그 새롭고 경이로운 생명체에 대한 

소중함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날 아내가 뱃속에서 발길질을 하는 어떠한 생명체에 대한

발견의 기쁨을 나에게 전해주었을때, 나는 미처 쉽게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볼록거리며 뭔가 꿈틀거리는 존재를 배에 담고서도 아무렇기 않고

오히려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는 아내를 보며

에일리언 영화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모습을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대단한 것이 아내이자 여성이며 어머니인 것이다.


나 같은 미물이 죽기전까지 그 신기로운 경험을 해볼 일은 없을 것이다.

대신에 태어나서 꼬물락거리는 그 신기한 자손을 보며

엄마보다는 덜하겠지만 나름대로 감동과 기대를 담아

소중한 사랑의 경험을 하는 것만도 남자로서 최고의 가치있는 경험이 아닐까 싶다.


아이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 목숨을 버리기까지 다다라있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자기 생명 안에 또다른 생명을 잉태했다가

그 생명을 자기의 힘으로 탄생시켰으니 아내란, 아니 여자요 엄마란

바로 인간을 탄생시킨 하나님의 심정에 잇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깊은 사랑이야말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게 아니라 

어머니라고 불러야 마땅하다는 어느 학자의 주장에 일맥상통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 어머니에게 세상은 결코 공평하지가 않다.

태어나는 아이들이 모두 건강하고 똑똑하게 태어나지 못하는

불공평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으니 말이다.


열의 하나, 아니 만의 하나라도 우리 주변의 어느 누군가에게서

우리와 다른, 평범하지 못한 장애아로 태어나는 것은 어쨌든 슬픈 일이다.

우리 사회가 짊어져야할 짐이라고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 당연함이 무관심으로 이어지는 것도 역시 가슴 아픈 일이다.

다양한 고통스런 상황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약 10%의 확률로 존재한다는 ADHD증후군은

엄마들의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내 아이만큼은 학교에서 잘 생활해주고 선생님께 귀여움을 받으며

즐겁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든 엄마들의 평범한 소망 아닐까.

그런 내 아이가 학교에서 행동장애로 선생님들의 시선을 받아야 하고

아이들로부터 선입견에 내몰려야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인가.


그런 엄마들의 대부분이 자기 아이의 행동장애 증후군을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도

역시 안타까운 일이다.

내 아이가 어때서, 내 아이는 아주 정상이고 그냥 저건 지나가는 일이라고

항변해보고자 하지만 주위의 시선은 그렇지 않다.

당장 같은 반 아이들만해도 한 번 그런 현상에 대한 인식이 박혀버리면

쉽게 지워내기 어렵다.

선생님의 경우에는 당연히 말 잘듣고 의사소통 원활한 보통 아이들과

문제가 있는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 차별을 두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선생님은 찾기 힘들 뿐만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다 기본적으로 

보통 사람일 뿐, 텔레비젼에 나오는 그런 대단하신 선생님은

대한민국 1%도 안되기 때문이다.


놀라운 사실, 아니 그보다는 내가 몰랐던 사실이라고 해야할까?

ADHD증후군의 99%가 생물학적 원인이라고 한다는 사실을 접했을때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환경적 요인과 생물학적 요인이 반반씩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요새는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생물학적 요인으로 결정짓고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내 아이에게 없는 증후군이라 관심 밖의 일이었고 아이들이 간혹

학교에 그런 아이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때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런 아이와

가까이 하지 말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그 아이가 더럽거나 병균이 옮을까봐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아이가 하는 행동을 보고 혹시라도 모방하진 않을까,

혹시 해코지를 당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런 아이에게

가까이 가지 않는게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나 자신에게 깊이 반성하고 있다.


행동장애 아이들의 거의 전부가 생물학적으로 유전자 속에 발현 요인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니 그 아이들이 그런 것을 두고 부모의 문제니, 교육의 문제니 하고

자꾸 분석적으로 따지고 들려는 우리의 자세를 고쳐야 마땅하다.

그 아이들에 대한 깊은 동정심Sympathy과 이해심은 이런 사실을 알고 나서야

내 안에 발생되고 있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소치인가.


내게 아버지는 언제나 아주 무섭고 불편한 존재였다.

자라면서 가장 닮고 싶지 않았던 존재가 아버지였고

가장 미워하는 존재가 아버지였다.

무능력의 표상이었고 난폭과 변태성의 결정체가 아버지였던 것이다.

언제나 내게는 폭력의 주체였고 어머니에게는 난폭과 욕설, 그리고 무시, 무책임이

이어졌던 존재. 그것이 나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상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용서하게 된 계기가 있다.

대학시절 예배를 드리던 도중에 목사의 설교를 통해서 나 자신을

제대로 조명할 수 있었다.

늘 아버지같지 않은 사람, 보다 책임감 있고 훌륭한 사람, 어질고 신중한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나는, 내 자신에게 매우 엄격하고 편협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그 날 설교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소리는 내가 얼마나 모자란 사람인지,

또 동정받아야 할 존재인지, 그리고 죄인인지를 살펴볼 수 있는 시발점을 제공해주었다.

그러자 모든 부분에서 확연히 보여지는 것이 있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 말이다.

하나님은 그런 나 자신을 바라보며 나를 무한히 이해하고 용서하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나 결과와 내가 어느 공간, 어느 시점에서 깨달음을 얻는 과정과

그 결과에 있어서 차이점은 사실상 없다.

깨달음에는 크기와 방식, 그리고 계기가 다를 뿐, 결국 그 깨달음의 주체는 나 이기 때문이다.


그런 깨달음 후에 내가 그동안 깊은 내면에 담아두었던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비판, 그리고 실망감 등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왜 그동안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왜 나는 그 동안 내 중심에 있었고 또 다른 중심을 향해 서 있는 아버지와 나를

객관화시켜볼 생각을 못했을까.

아버지도 불쌍하기 그지 없는 피해자였던 것이다!

아버지가 피해자라니! 

그러나 사실이다. 

아버지도 누군가의 자식으로 자궁을 열고 태어난 존재이고 불행한 가정과

시대를 살아오며 치열한 전투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태어나서부터 지니고 살아온 불행하고 어두운 삶의 무게가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 그것을 도와주지 않았고 그 아픔을 함께 나누어줄 존재가 없었을 뿐이다.

그도 약한 자요 불쌍한 한 존재라고 생각하자 모든 문제의 핵심이 보였다.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고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했으며

결국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앞에서, 아버지의 뒤에서 계속 손가락질을 했을 뿐,

아버지 옆에 서서 아버지가 바라보던 세상, 아버지가 가고 있던 그 길에

무엇이 놓여있었고 무엇이 그를 가로막고 아프게 했는지를

바라볼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어느날 나는 조용히 아버지 곁에 서봤다.

아버지 보다는 아버지가 바라보는 쪽을 보게 되었다.

그러자 거기에 내가 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용서는 이해에서부터 출발한다.

적어도 내 경험에 의하면 말이다.

ADHD증후군을 가진 아이를 대하는 나의 내면의 어리석음때문에

그 동안 그런 아이들에 대해 신경쓰지 못하고 관심을 갖지 못했다는 점에서

많은 반성을 했고 앞으로는 그런 아이들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지고

상담에 임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다만, 또다시 내가 알게 된 지식이지만

행동장애 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이들 중의 50%는 약물로 1~3년 안에 

매우 호전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엄마들이 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바람에

일찌기 조치를 취해서 검사를 받고 약물 치료가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불치에 가까운 상황으로 고착시켜 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앞서는 까닭에 미처 진정한 자식 사랑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물론, 그런 진단을 받는 순간부터 자식의 인생에는 꼬리표가 붙을지도 모른다.

저 아이는 증후군을 앓는 아이다.

장애인이다...라고 말이다.


그러나 나을 수 있는 문제인데도 엄마의 자존심을 꺽지 못해서 

자식의 인생에 더 큰 짐을 지우고 있다는 사실을 엄마들은 알고 있을까.

우리 사회의 구성원 중 10%에 이른다는 ADHD증후군.

사회 구성원들의 바른 이해야말로 문제 해결의 열쇠인 셈이다.

중요한 의학 지식을 통해서 마음의 짐이랄까..걱정이랄까.

무거운 뭔가를 다시 내려놓게 되어 기쁘다.

그동안 내가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던 아이들에 대한 깊은 이해가

내가 하게될 상담 자원봉사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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