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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진요 소셜 프로그래밍의 출발일지도 모른다!

오션지 2010. 10. 8. 17:25

방송과 검찰에서조차도 사실 확인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타진요 까페 회원들은 의혹의 글을 올리고 있다. 오히려 지난번 보다 더욱 정교하고 집요한 자료를 내걸고 회원들의 동조를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가하면 아예 변호사 비용가지 월급에서 내겠다고 하는 이도 있을 정도로 여전히 타블로 관련 의혹의 문제는 다 해결되지 못한채 사회 문제로 불씨를 남기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요즘 타진요 까페의 행보는 마치 옛날 사이비 종교 신도들의 모습을 보는 것같다.

옛날에 모 교회 장로가 갑자기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여 자신을 신격화하고 신도를 모아 한국 사회에 큰 이슈를 만든 경우가 있다. 지금도 그 추종자들은 여전히 그 때의 일들을 사실로 믿고 생업에 종사하는 현장에서도 다시 재건을 꿈꾸고 있다고 한다.

또한 한 때는 말세론이 팽배해져서 종말의 시한을 정하고 예언하는 일이 있었다. 그 일로 기존의 전통 교회 목회자들중 일부도 종말이 온다는 그 날을 대비해 목욕재개하고 예수의 재림을 기다렸다고 하니 그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역시 그 추종자들이 최근까지도 다시 날짜를 수정해서 종말을 예고하고 준비까지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 사람들을 따르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이 있다.

얼마전에는 허경영이라는 인물이 대통령 선거에까지 나와서 지금 생각하면 참 허황된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축지법이라든지 공중 부양같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기현상을 마치 사실인양 퍼뜨리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자의 반 타의 반 그를 따르거나 신뢰하는 현상까지 있었다.

당시에 그를 보좌하던 수행원은 방송에까지 나와서 그의 모든 말과 행동이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고 믿고 있었다. 우리가 방에 앉아서 사실은 아니라고 분명히 알고 있는 것도 그에게는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역시 지금까지도 공화당 당원들은 허경영씨를 추종하고 있다.

 

타진요 까페 회원들도 마찬가지다.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는 곳이 청와대라고 하면 더 믿지 않을 태세이다. 아마 대법원장이 이 사건에 대해 어떤 발표를 한다고 해도 모두 음모론으로 치부할 것이다. 이미 그들에게 기정 사실화되어버린 어떤 내용은 절대적 성역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아무도 손을 대어서는 안된다. 타블로가 틀림없이 학력 위조를 했고 거짓말장이라는 사실은 성경보다 더 확실한 절대적 진리인 상태에서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생각인 것이다.

 

우리는 가끔 해외 토픽을 통해서 이슬람 극렬주의자들이 자살 폭탄 테러를 하곤 하는 뉴스를 접한다. 그리고 매우 의아하게 생각한다. 종교와 신념을 위해 자신을 저렇게 파괴시키면서까지 저들이 이루려는 것이 무엇일까? 심지어는 외국인까지 납치해서 공개적으로 처형까지 하는 짓을 서슴치 않는 그들에게서 우리는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 신념이 어느 누구도 깰 수 없는 단단한 벽이다. 그것은 외부로부터의 어떤 도전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하는 강력한 성벽을 쌓아둔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것이다.

 

이런 견고한 신념은 우리 사회 곳곳에 있고 일반 가정에도 있고 개인에게도 있다. 만일 그런 체계가 없다면 우리 사회는 기준이 없고 질서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살인을 하면 죄가 되고 그 죄에 대해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왜 중요한 기준일 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여러가지 사회 공통의 의사적 신념 가운데에서도 특히 인간 대부분의 동의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인종적으로, 사회 통념적으로 오랜 기간에 확인되어진 절대적 신념인 셈이다.

그런데 살인이 죄악이라는 신념은 인간에게 교육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태어나는 인간은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죄악이라고 부모로부터 교육받지 않아도 양심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것이 교육에 의한 것이라면 문제가 심각해지기 때문에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기본적으로 각인되어져 나오는 다양한 심성이 있기 마련이다. 자식이 어머니를 이성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인간이 지닌 본연의 심성이다.

사람을 아무 이유 없이 때리는 것 역시 잘못이라는 것도 태어나면서 배우는 것이라기보다는 각인되어져 나오는 경우이다.

다만, 고립된 특수한 환경에서 인간 스스로가 아닌, 사회적 합의나 의도적이지 않은 상황이 주는 학습에 의해서 인간은 같은 인간을 잡아먹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는 그들이 속해있는 사회가 일반적인 양심에 의해 운영되지 않고 특수한 환경이 우선 작용하기 때문에 인육식이 죄악이라는 양심보다 생존 욕구가 우선 작용하는데에서 기인하는 특수 현상인 것이다.

 

그럼 다시 타블로 사태로 돌아와보자.

지금 타블로를 성토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19만여 전체 회원의 의견은 아닐 것이다. 딱 절반만 잡아도 약 10만명이 되는데 이들이 타블로가 사기꾼이라고 믿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심각한 집단 신념의 발현이다.

이들은 타블로 관련 타래글을 읽으면서 점점 그 글에 자신의 감정과 신념을 이입하게 되고 결국 그것이 모두 진실이라고 믿기 시작하는 것이다. 만일 어느 누구도 그러한 현상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들을 의심을 하겠지만 까페 회원들 중에서 의혹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는 이유로 오히려 그들의 확신을 더욱 굳어지고 마는 것이다.

성벽을 넘어 오려는 적을 물리치는 수비심의 자동 발동이다.

내가 믿는 것에 대한 도전은 나에 대한 도전이고 그것은 이 각박한 사회를 살아가는 나에게 생존을 위협하는 행동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확신, 곧 신념이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것은 자신을 충분히 투영시킨 결과물이기 때문이 그것을 건드리는 것은 잘 키운 사과를 누군가 훔쳐가는것 같은 박탈감에 대한 두려움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들은 이미 정해진 코드만 읽을 줄 아는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나 마찬가지다.

다른 코드로 작성된 언어는 읽지 못하며 호환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어떤 다른 소스도 필요치않다. 이미 주어진 코드에 따라 움직이는 것에서 충분히 만족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컴퓨터 자체는 무슨 의미일까?

나이가 70이 넘은 노인에게 컴퓨터는 유일하게 위안을 주는 친구이다. 늙어서 대화조차 많이 없는 아내와 달리 컴퓨터는 클릭만 하면 언제나 새로운 것, 더 나은 것들을 보여준다. 그래서 컴퓨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살아가는 네티즌들은 컴퓨터와 똑같은 프로그래밍된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다. 자신에게 맞는 것을 좋아하는 이런 현상은 바로 컴퓨터가 가진 특성 중의 하나다.

블루 스크린은 현대인에게 매우 어색하고 짜증나는 현상이다. 내가 알고 있고 내가 늘 사용하고 내 명령을 잘 들어주는 컴퓨터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는 블루스크린이 뜬다는 것! 그것은 나에 대한 도전이자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나 자신에 대한 절망인 셈이다.

 

타진요 까페에서 활동하면서 타블로 사태에 대해 일방적으로 추종하는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렇게, 자신들이 이미 프로그래밍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왓비컴즈라는 매니저는 실상 자기 자신도 모르는 어떤 코드를 까페 회원들에게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끊임없는 의혹, 증거자료 제시라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글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타인의 심정을 아주 잘 대변하는듯한 그의 글솜씨, 굳이 솜씨라고 할 수도 없는 그의 글을 읽으며 자기 입맛에 맞는 코드에 심취하고 있는 IT 세대들..

 

타블로 사태의 해결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프로그래밍 현상이다. 내가 이름 붙이자면 Social Programming 현상이다. 예전부터 이런 현상은 충분히 있어왔다. 글이나 책에 무지하던 중세이전의 국민들에게 왕과 제후들은 지금보다도 훨씬 단순하고 쉽게 사회를 프로그래밍해왔다. 소문이나 음모, 심지어는 테러를 자행하면서까지 자신들의 권위를 유지하려고 했던 노력들은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충분히 있어왔던 현상들이다.

다만, 그것이 지금은 디지털화되어가고 있다는 차이만 있을 뿐.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진 정보에 의존하는 것은 수동적 프로그래밍 현상이라고 한다면 직접 정보를 제공하는 쪽은 능동적인 프로그래밍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상호 작용이 코드가 일치하면 같은 소프트웨어라는 통일성을 가지게 되고 무엇보다도 견고한 커뮤니티라는 하드웨어를 가지게 된다. 이 하드웨어는 얼핏 보기에는 개방적인것 같지만 사실은 하드웨어 자체가 이미 폐쇄적인 성격이 짙기 때문에 동질의 소프트웨어를 얹은 하드웨어 안에서 그들은 무엇보다 견고한 자기들의 성을 쌓게 되는 것이다.

 

이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외부로부터의 어떤 접근이나 다른 코드를 모두 바이러스로 인식한다. 그들은 삭제되어야 하는 존재들이란 의미이다. 타진요 까페의 운영진이 강퇴라는 삭제 기능을 사용하는 것은 이들이 자신들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안으로 진입하려는 다른 코드들을 악성 코드 또는 바이러스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삭제된 어떤 코드가 아무리 의의를 제기해도 이미 그들에게 붙여진 악성 코드라는 누명을 벗겨지지 않는다.

 

타진요는 그러한 무시무시한 사회 현상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정부는 비단 타진요뿐만 아니라 이런 유사한 형태의 고립화를 막기 위한 대책을 반드시 미리 세워야 한다. 지금은 집단화 하면서도 집단 자신들이 이런 현상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더욱 무서운 사실은 이러한 프로그래밍된 집단 공동체가 충분한 자각과 동시에 결성이 되는 순간, 그 집단은 핵폭탄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된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월급을 내놓겠다는 집단의 일원, 응원과 박수를, 격려를 아끼지 않는 같은 코드를 가진 사람들의 지원등을 소스로 타진요는 다시 절대적 권력집단으로 거듭나려고 할지도 모른다. 타블로는 사실상 그들의 재료에 불과할 뿐, 이미 그들이 만들어 놓은 다양한 써드파티 프로그램들에 의하면 앞으로 희생양은 얼마든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