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픽션이야-It's not..

거제도 앞바다의 추억-2

오션지 2010. 10. 2. 14:08

바다에 가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 무엇일까?

뜨거운 여름, 아무리 바닷물이 차다한들, 준비 운동하고 들어가는 사람 몇 못봤다.
우선 자리를 잡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그 다음 자리를 잡았으면 여자들과 애들은 일단 바닷가로 뛰어간다.
굳이 뛰어가서 뭘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나만 남겨놓고 그 다음 절차에 대한
일언반구의 지침도 없이 자기들만 뛰어간다.

바다에 두고온 토끼 간을 찾으러 가는 것일까..
암튼 난 혼자서 주차비 계산에 각종 음식과 간이 파라솔, 쥬브..애들 쏜크림..
그리고 촬용장비...

무거운 짐을 지고 수차례 왔다갔다 해야지만 겨우 다 옮기는 그런 짐들을 다 옮겨놓고
나서 자리에 앉을라구 그러면 여지없이 아내의 일갈이...터진다!
'쥬브에 바람 넣어요!'
홈그라운드라고 오십프로 먹고 들어간다.
일단 장모님 끝발을 믿고 빵빵 질러대는 마누라를 익사시킬 방법을 연구하게끔
마누라는 나의 열발을 받게 만들어놓지만, 일단 참아야 한다.

여자들은 남자들하고 이혼못하고 왜 사냐고 그러면
90프로 이상은 애덜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자들도 모르는게 있다. 남자들도 이혼못하고 사는 이유가 있다.
마찬가지로 애덜 때문이다.

하루라도 못보면 죽을것 같은 애덜이 눈에 밟혀서 엄처시하에도
찍소리 못하고 사는게 '남자의 인생'이다.
여자들은 '편견을 버리기' 바란다.

암튼, 그렇게 다시 쥬브에 바람을 넣고 있는데 올해는 내가 어찌나 정신이 없었는지
바람넣는 장비를 놓치고 왔다. 분명히 넣은거 같앴는데 찾아보니 없다.
결국 나는 아이들 셋과 마누라, 거기다가 덤으로 장모님꺼까지 다섯 개의 쥬브를
입으로 불었다. 건강 보험공단에서 매년 나이먹었다고 보내주는 무료진료권을
따로 써먹을 필요없다.

나처럼 40줄에 가까워오는 위험수위의 남성들은 매년 여름 해수욕장 갈때
쥬브 다섯 개만 가지고 가면된다.
거기서 쥬브 다섯 개를 다 불고도 기절하지 않으면 그런대로 아직은 살만한 것이다.
가관이 아니었다. 하나씩 불어서 애들 셋에게 던져주고 마누라 것을 불 때는 정말
이게 사는 것인가 싶었다. 주변에 있던 어떤 할머니가 보다 못해서

'저기 애기 아빠, 고만 불고 저거 그냥 하나 빌리지...얼마 안비싼데..'
문제는 이 이야기를 내가 네 개째 불 때서야 해주었다는 것이다. 빌릴수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남자가 쓰러지는 이유는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이 아니던가!
네 개를 다 불었다. 그리고 아내까지 쥬브를 차지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모두 놀라게 한, 아니 눈을 돌리게 한 것은 그 다음이었다.
앞서 아내의 쥬브까지는 모두 조그마한 일인용 도너츠 쥬브였다.
하지만 마지막 내가 불려고 입을 댄 그것은 장모님을 드릴 '보트'였다.

아까 그 할머니는 나 먹으라고 조용히 옥수수 세 개를 놔두고 그만 눈을 돌렸다.
하지만, 난 끝내 장모님의 쥬브까지 다 불었고 기절은 하지 않았다.
미션 임파써블...

내가 참 바보같다는, 아니 애처롭게 산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근데 정말 웃기는 건 그렇게 쥬브 다섯개를 몽땅 불어도 내가 기절하지 않는 것과
눈꼽만큼의 미안함도 없이 할 일을 했다는 식으로 자기들끼리만 노는 가족들이었다.

그렇게 모두 놀 동안 나는 팔천이에 생전 첨으로 일기를 썼다.
보통 사람들은 행복한 일보다는 슬픈일이나 괴로운 일을 일기로 더 남기고 싶어한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일기는 다음날 내 팔천이가 뻗어버리면서 날아가버렸다.
일기를 남기는 것조차도 협조를 하지 않는 팔천이...

한참을 팔천이와 놀다가 불쌍했던지 같이 놀자고 해서 잠깐 바다에 들어갔다가
나왔고 어느덧 오후가 되어 나는 숙박지로 가기 위해 준비를 했다.
산은 올라가는것보다 내려오는게 더 힘들다는 것을 아는가?
군대 가서 백키로 두 번만 뛰면 말년에 무릎이 시큰거리면서 뼈저리게 느끼는 것.

쥬브는 불 때보다 바람 뺄때 더 힘들다는 것을 아는가?
여름 해수욕장에서 다섯개를 불어보고 다시 그걸 다 바람 빼고나서
허기를 느낀 사람이라면 폐저리게 느끼는 것.

이래 저래 기억에 남는 거제도 여행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