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픽션이야-It's not..

거제도 앞바다의 추억-1

오션지 2010. 10. 2. 14:08

이번 여름 여행은 가족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거제도 앞바를 택했다.
몸만 가는 사람이야 좋아서 죽을 지경이지만...
어느 CF에 나왔던것처럼 거기까지 달려가야할 내 차는 죽을 맛일테다.

'난, 충주래..'
'냐, 난, 대전이야, 임마'
'이것들이 주름잡네...난 거제도야, 임마!'

옆집 차들하고 주고받았을법한 내 차의 대화...

깨스 팍팍 넣고 일단 내달렸다.

마누라는 출발하기전 유난히도 내 팔천이를 꼼꼼히 챙겼다.
요즘 아내에게 생긴 버릇은 자기 삼송이는 그냥 빽에다 집어던지듯 넣어놓고
내 팔천이가 어디있나 살피다가 얼른 챙기는 것이다.

내가 상상하기에 두가지 이유다.
하나는, 나의 건망증을 익히 알고 있는 마누라가 비싼 팔천이를 잃어버릴까봐 챙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요즘 거반 미쳐있는 고스톱을 땡기기 위해서다.

암튼 지독히도 챙기는 바람에 내 손에 팔천이가 붙어있을 틈이 없을 지경이다.
팔천이도 괴롭겠지. 워낙에 기계치에다 힘만 엄청 쎈 마누라가 생각없이 집히는대로
이것저것 갖은 도구(?)를 이용해 자기를 괴롭히는데...얼마나 힘들겠는가?

조만간 불쌍한 내 팔천이의 피부이식을 해야할까보다.

거제도로 가는 동안 수없이 들렀던 휴게소들...
그 휴게소들마다 내 팔천이가 사실 무척 자랑스러웠다.
알고들 있겠지만 휴게소에 가면 사람들이 꼭 하는게 몇가지 있다.
하나는 쉬~~
다음은 커피한잔,
그 다음은 핸드폰가지구 연락하거나 장난하는거다.

사실 그런데 가면 삼송이도 심심찮게 볼 줄 알았는데 없는걸 보면
삼송이가 인기가 없는 기종이거나 다른 기종도 꽤 쓸만한 것인가보다.
마누라가 막내 딸년 찍는다고 삼송이 모가지를 이리저리 비틀고 있는 동안
아무래도 눈에 띄는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신경을 좀 쓴다.

그러는 동안 나의 팔천이는 어디에 있었는가!
마누라에게서 이젠 장모님으로 패스..
하지만, 아날로그 고스톱의 달인이란 장모님의 자부심은 디지털의 일방적인 정보전달 테러에 그만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본래 여행과 고스톱은 불가분의 관계가 아니던가..
아날로그던 디지털이던 고스톱은 고스톱이건만,
역시 차이점은 현금박치기가 주는 현장감이다. 사위니 장모니, 딸이니 하는 것들은
화려한 그림조각들과 난무하는 현금,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관계성보다는 수입성에 몰두하느라  평소에 안쓰던 머리를 무리하게 쓰는 바람에 발생하는 에네르기 과열현상이다.
웃음으로 시작해 싸움으로 끝나는게 고스톱이라던가..

하지만, 우매한 중생들 중에도 현자는 반드시 있는법.
이러다간 촌수 따지기 힘든 인간관계가 어찌될까봐 나는 지레 겁을 먹고
기냥 바닥에 누워 디지털 고스톱을 치기로 맘먹는다.

참고로, 하수와 고수의 차이는 넣을 때 넣고 뺄 때 빼는 테크닉(?)에 있다는 것을 기혼자들은 알것이다! 고스톱에도 바로 이러한 고수의 개념이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
그걸 놓치면 만사가 꽝이다.

그럼 고스톱은 둘이 치는가? 맞고도 있지만, 나같은 폭탄이 빠지는 바에야
기왕의 재미란 훨씬 반감되었다. 결국 모두들 자기 핸펀으로 고스톱을 치는데...
지금 생각해도 웃긴 일이다. 아내는 삼송이로, 나는 팔천이로, 장모님은 그제서야
따운받은 고스톱으로 손가락 운동을 하신다.

오직 비프음과 간혹 들리는 '뻑'소리만이 유일한 어느 모텔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여행을 와서 요행을 바라는 진귀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