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동네는 작은 곳이다.
아이들이 전학년 200명이 조금 넘는다.
동네 학부형들은 서로 대부분이 얼굴도 잘 알고 지내는 편이고 만나면 자기집 얘기 정도는 쉽사리
꿰고 있는 이웃들을 보는게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가깝게 지내는 편이다.
초등학교 딱 하나 있는 동네에서 무슨 큰 사건 사고가 있을까..
여간해서는 큰 소리 안나고 조용 조용히 지내오는 동네 학교에 최근 시끄러운 사고가 일어났다.
동네는 작지만 서울과 가깝다는 지리적 여건도 있고 또 전원 주택지로 각광을 받는 곳이다보니
외지 사람들이 자주 들어온다. 그리고 아예 정착하는 경우도 요즘은 꽤 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얼굴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들 들어오는데 인사하기도 참 뭐하고 해서
그냥 얼굴 자주보는 사람만 저 사람이 우리 동네 사는구나 하는 정도로 익히고 지내는 편이다.
그런데 그렇게 들어오는 사람들 중에 유독 우리 동네에 교회와 기도원 같은 것들이 여럿 들어오는 편이다.
이해가 잘 안간다. 동네에는 큰 교회가 이미 있고 다른 교회들도 꽤 된다.
그런데 들어오는 사람들마다 교회를 차린다.
전원 교횐가 뭔가 해서 산 중턱에 세우거나 조금 깊숙한 택지로 들어가서
기도원을 차리거나 한다.
하나님의 복음이 잘 전해지게 하려는 열정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리라 생각하니
한편 위로되는 일이긴 하지만 왠지 작은 동네에 분에 넘치는 교회 숫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다.
게다가 새로 들어오는 교회들인 저마다 건물이 번듯해서 기존에 동네에 있던 교회들하고는
규모나 시설에서 큰 차이가 난다.
인구가 많지도 않은 동네에 뜬금없이 시설 좋고 규모 있는 교회라...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이
사실인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것도 이유가 있다면 있는 셈이다.
교회가 세워지고 있는 곳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바로 도로 이용 계획이 고지된 곳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급한 결론인지 몰라도 교회 부지로 이미 요지를 차지하려는 의도가 아니고서는
지금 허허 벌판이나 마찬가지인 농지를 굳이 용도 변경해가면서 택지로 만들어 비싼 세금
내가면서까지 교회를 지을 이유가 없다.
바로 그런 이유로 들어서는 교회들...다 어느 교단이고 어느 종파고 목사가 누군지 하는 것을
굳이 알고 싶지는 않지만 기존 교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조그마한 동네에 파고 들어오는 교회들을
보는 마음은 그리 좋지 못하다.
요즘은 교회 건물 잘 지어놓고 왠만큼 설교하면 사람들이 모인다. 게다가 생활 형편이나 기타 여건들이
좋아졌기 때문에 목사 가족 부양하는 정도의 책임을 감당하는데까지 얼마 걸리지도 않는다.
그래서인지 신학대학 나오고 목사 안수 받고나면 형편만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개척이라는
미명하에 무조건적으로 교회를 짓기에 이르는 것이다.
물론, 모든 교회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오늘의 내 글의 대상이 되는 이런 목사들이
있기에 다소 부정적인 의혹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한 두해 전부터 동네 초등학교에 학부형들 사이에는 어떤 교사가 아이들에게 좀 숙제도 많이 내고
체벌도 한다면서 항의가 있곤 했다. 그러나 항의라는게 특별한 것이라기 보다는 교장에게
전화 정도 하고 교사에게 주의를 주기 바란다는 정도였다.
그 교사는 정년을 몇 년 앞둔 여교사였는데 이번에 큰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동네에 이사와서 산중턱에 교회를 하나 세운 어느 목사 가정의 늦둥이 아이를 체벌한게
문제가 된 것이다.
이 아이의 부모인 목사의 부인은 자신의 아이를 체벌한 교사에게 찾아가 항의를 하고
교장에게도 항의를 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곧바로 각종 행정절차를 밟아 교육청에
찾아갔고 교육위원회에까지 항의하기에 이르렀다.
일이 이쯤 되니 학교에서는 교장 선에서 합의로 해결하려던 생각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그 목사 부인을 찾아가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며 부디 원만히 해결해 달라고
간청했지만 손톱도 들어가지 않았다.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목사의 부인이 약간 이상한 사람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건 며칠 전부터였다.
사태 해결을 위해 예전에 항의까지 했던 학부형도 이번 일을 원만히 해결해 달라고 부탁하러 간 자리에서
그 목사의 부인은 이 교사가 해직될때까지 절대로 멈출 생각이 없다고 주장하며 완강히 버티기 시작했다.
그런 부인의 모습을 보고도 아무런 의견 표시를 못하는 남편 목사는 부인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다는
소문마저도 돌고 있다. 일이 이쯤 되면 사태 파악이 어느 정도 될것같다.
남편 목사는 유명한 어느 선교 단체에서 일한다고 했다.
목사의 부인은 자신이 유명 인사들을 잘 안다고 하며 으름장까지 놓는다고 했다.
이제 일 년만 있으면 평생을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을 위해 삶을 바친 한 여교사의 정년 퇴직이다.
그런 여교사에게 목사의 부인은 해직을 요구하고 나섰다.
물론 소문이지만 아이에게 했다고 주장하는 목사 부인의 증거들 중에는 사실이 아닌 것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대부분은 교사 보다는 학부형쪽이 훨씬
유리한 편이라서 결국 그 교사는 해직될 것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자, 사실 여부를 가리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교사가 평생을 교단에서 잘 지내왔더라도 한 순간의 실수가 아이에게 큰 상처로 남을 수도 있고
평생 처음으로 체벌을 했다고 하더라도 체벌을 체벌이고 그 정도가 심했다면 당연히
제재를 받아야 한다는게 요즘 세태이다.
그런 세태를 거꾸로 뒤집자거나 고집을 피워가며 붙잡아 두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간의 인정이라는게 이렇게도 매마를 수 있을까 하는데서 오는 괴로움이 있다.
특히 목사의 부인이라는 사람의 끈질긴 해직 요구는 도무지 용서라는 단어와는 참 거리가 먼
종교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자식이 귀한 것은 윗집 김서방네나 아랫동네 박서방네나 모두 마찬가지다.
표현의 방법이 다르고 내용이 다를 뿐, 그 사랑의 근본은 부모 자식간의 사랑이므로 동색인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유독 자기 자식만 귀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의식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다수 있다.
목사의 부인이라고 반드시 용서해야한다는 억지 주장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어느 얘기를 들어봐도 그 교사의 체벌이 아이에게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만큼
과중한 것이 아니었고 다만 아이의 기질을 두고 교사로서 말의 폭력을 행한 사실이 인정되는 바
시정하고 사과하며 아이를 남은 기간동안 사랑과 관심으로 잘 교육하겠다는 다짐을 받고
일단락 맺는 것도 좋은 방법일텐데 끝까지 해직을 논하며 물고 늘어지는 모습은
교회, 특히나 목사의 가정에서 하는 일 치고는 눈에 부끄러운 행동이 아닌가 말이다.
목사는 더 용서해야 하고 일반인은 덜 용서해야 하는건 아닐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조차도 평범한 사람과 같이 두고 보자면 목사가 굳이 목사이어야할 이유는 또 뭔가 말이다.
남의 존경을 거저 받고 사는 것은 목사가 아니다. 왜 이유없이 일반인이 목사를 존경하고 의지하는가
그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목사의 부인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시켜서 한다'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자기 생각의 관념화의 결과인지 정말 그런 명령을 받아서 그러는지는 하나님과 본인만 아는 일일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사회 통념과 사랑과 용서를 저버리고 원리원칙대로 사람의 인생을 거꾸러뜨릴만큼 모질게
그 교사를 책망하라고 시킨다는건...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부분이다.
십자가에서 '저들의 죄를 저들 스스로가 모르고 있으니 용서해 주시기를' 원했던 마지막 숭고한
희생과 사랑으로 자신의 빛내신 그리스도의 사랑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율법의 하나님에만 머무르는 율법적 사고방식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유아기적 심리 상태를
목사의 부인은 극명히 드러내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가슴 아픈 사실은,
목사의 부인이 이 교사를 해직시켜려는 강한 의도를 품고 관려 자료를 치밀하게 모아왔었고
심지어는 교사와의 대화 내용을 본인 동의 없이 몰래 녹취까지 해서 증거자료로 만들어
제출했다는 것이다.
이 고의적 행동에는 인지상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는다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마치 사슴을 잡으려다 사람을 맞힌 사냥꾼과 아예 사람을 조준하고 쏘는 저격병의 차이를 보는것 같다.
한 사람에 대한 미움이 충분한 대화와 상대방에 대한 존중에 근거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어렵긴 어려운 모양이다.
자식이 학교에서 교사로부터 제대로 인정받기는커녕 오히려 모멸을 당하고 맞기까지 했다면
부모의 심정이 얼마나 아플까. 마치 자신이 선생님에게 맞은 것과 같은 수치를 느끼는건
아이가진 부모라면 당연히 느끼는 심정이다.
하지만 역지사지란 말이 있다. 꼭 한 번은 뒤집어놓고 생각도 할 줄 알아야 사람다운 법이다.
동네에서는 학부형들이 모여서 교사의 잘못 보다는 목사 부인이라는 이 사람의 행동에 더욱
분개하고 있다. 차라리 이기적이지만 목사의 부인만이라도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굳이 목사의 부인이라서 더 욕을 먹고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도 얼마든지 있을법한 상황이니 말이다.
모든 이를 용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모든 상황을 용서한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사람의 관념 속에 갇힌 상태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이 일이 용서든 무엇이든 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가능한 까닭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적극적으로 동화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때에야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적어도 내가 판단하기에 목사의 부인이 이 교사를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아직도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연합을 이루지 못한채 살고 있기 때문이고 그것은 성화의 과정에
여전히 입문조차도 못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우리는 간혹 종교를 내세우면서 불가능한 것들을 충분히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스스로 확신하기까지 한다. 사실 그렇지 못하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서도 교회라는 곳에
가면 그 통념적이고 경험적인 결론들을 적극적으로 부정하면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아멘이라고 하면서 마치 다 이룬것처럼 기뻐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런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기적은 평범함 속에서 피어나는 예사롭지 않은 한 떨기 꽃과 같다.
우리 주변에 충분히 있으면서도 눈여겨보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는 것이 기적이다.
교사를 용서하지 못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끝까지 행하려는 그 자세는 바로 기적을 발견할 수 없는
사람의 자세이다. 왜냐하면 그는 철저히 사회통념과 경험에만 머물러 있을 뿐, 그 어떤 작은
기적도 맛본 적이 없는 메마른 영혼이기 때문이다.
만약 목사의 부인이 교사를 진정으로 용서하고 마지막 남은 일생의 결과를 맞이할 수 있는
축복을 베푼다면 그것이야말로 그의 삶에 찾아온 최초의 기적이 되는 셈이다.
'넌!픽션이야-It's no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통령만 물고 늘어지는 오**뉴스-진정한 비판언론이 되어주길 (0) | 2010.11.28 |
---|---|
거제도 앞바다의 추억-3 (0) | 2010.10.02 |
거제도 앞바다의 추억-2 (0) | 2010.10.02 |
거제도 앞바다의 추억-1 (0) | 2010.10.02 |
오프라 윈프리와 조엘 오스틴의 믿음 (0) | 2010.0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