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픽션이야-It's not..

거제도 앞바다의 추억-3

오션지 2010. 10. 2. 14:09

거제도에 바닷가가 몇 개인지 아는 사람...손들면..안된다.
대답하기 전에 반드시 생각해야할 것은 거제도가 섬이라는 점이다.

거제도는 온통 바닷가다.
해수욕장이 돈되는 건지는 모르지만 거제도 사람들은 사람 허리까지만 물차는 곳이면 죄다 해수욕장을 만들어놓았다.

남이 먹고사는 일에 내가 왠 딴지를 거느냐고?
딴지가 아니다. 생존의 기로에 선 사람으로서 처절한 절규다.
앞서 불었던 다섯개의 쥬브를 차에 다 싣고 다닐 수가 없다. 가뜩이나 식구도 많은데 빵빵하게 바람들어간 쥬브를 싣고 다닌다는 게 불가능해서..

그래서 쥬브를 해수욕이 끝나면 반드시 바람을 빼야한다.
거제도에 해수욕장이 몇 개인가...왜 이게 나한테 처절한 고민인지 알 것이다!
본래는 4박5일의 일정이었던 거제도 여행 일정을 우찌우찌해서 하루만이라도
줄인 것은 그나마 천운이었다.

이젠 쥬브만 보아도, 아니 애덜이 오늘 먹은 도너츠를 보아도 폐가 저려온다.
다음번 여름 여행에는 옵션을 좀 고려해볼 생각이다.
1. 팔천이랑 단 둘이 여행가는거
2. 애덜을 빼고 마누라만 가는거
3. 나만 홀라당 빠지고 끼리들 다녀오는 거
4. 쥬브는 절대 안가져가거나 기계를 챙기는 거

어느것도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원래 옵션이란 되든 안되든 선택하는 거 자체에
재미가 있는 것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제일 먼저 한 일은 일단 동영상 촬영한 것을 가지고
캡쳐해서 멋진 DVD타이틀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내 디카와 팔천이로 열쉬미
찍어댄 여러 컷의 사진들을 일일이 편집하는 것도 물론이다.

그런데 며칠 전에 일이 있어서 처제를 만나러 하남엘 갔다.

둘 있는 처제 중에 막내 처제는 아는 게 없어선지 욕심이 없어선지
나한테 300만화소 대 디카를 덥석 선물로 주었다.
회사 오너로서 돈 잘버는 동서가 최근에 손바닥보다 작은 디카를 사서
엄청 자랑을 하길래 슈렉2에 나오는 고냥이의 애처로운 눈빛 연기를 좀 했더니
바로 다음 주에 지가 쓰던 디카를 들고 왔다.

그 디카는 3.3메가픽셀로써 밧데리만 좀 아리까리할 뿐, 사용하는데에는
전혀 지장없는 명품이었건만, 자기가 찍은 이전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행부, 이게 성능이 넘 안좋아, 아무리 찍어봐도 화질이 이거밖에 안되요'

사실 처제가 찍은 사진을 보니 내가 대충 잠결에 퍽 눌러도 그거보단
잘나왔을 법 하다. 화질이 대략 어질어질한게 지구 자전 속도를 짐작하게 한다.
포샵에서 이리저리 궁색한 손질을 해도 여전히 어리어리한 화질은 나아지질 않았다.

'그래, 이 디카가 고장 났나부다. 행부가 고쳐서 쓸게...'
하고는 엄청 선심쓰는것처럼 말하고는 마치 고물 수집하는 엿장수마냥
생퉁맞게 물건을 받아쥐고는 휙, 내 책상위에 던졌다.
(아악..! 제발..부서지지 말아다오!-부르르 떨며)

어린 아이한테서 사탕 뺏는 심정이 이런가보다.
하지만 못사는 집 애한테 뺏으면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끼겠지만
부잣집 애는 뭘 먹어도 비싸보이고 뺏어도 오히려 속시원한 법.

처제에게서 뺏은 디카를 간단히! 셋팅하고 우리 애덜 사진찍어주니까..
새로 태어난 디카가 되었다. 본래 디카가 셋팅이 어디있겠는가..
끽 해봐야 화이트 밸런스에 레졸루션 쬐끔, 그리고 모드 전환...모 그정도인데..
과연 마이다스의 손을 거치니 확실해진 디카 화질..

그랬던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처제가 다시 새로 샀다고 들고온 그 얇디얇은
디카를 하남에 가서 보게 되었다. 일단 엄청 얇은 것이 쫌 기를 죽였다.
그리고 케이스도 있었는데 잘 만들어져서 기스도 안나고 땀도 안묻게 되어 있었다.
근데 문제는, 그 디카도 처제 손에만 가면 이상하게 화질이 영...안좋았다.

과연 이 디카마저도 내가 빼앗을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그래도 마누라 동생인데
나하고 피한방울 안섞인 처제지만 동생은 동생..그래서 시스터 인 로우(sister in law)라고 하지 않던가. 결국 이 말은 동생이지만 잘못하면 법에 걸린다는 뜻일게다.

언제나 그렇듯 나의 글에는 항상 팔천이가 주인공이다.

내가 처제네 컴터에 미리 만들어간 사진 모음을 열어서 이번 여름여행 자랑을 하고 있는데
내가 찍은 사진 중에는 소니 디카로 찍은 것과 팔천이로 찍은 것이 각각 있었다.
처제한테 소니로 찍은 것과 팔천이로 찍은 것을 구분해보라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첨엔 잘 구분을 못했다. 하지만 내가 방법을 알려주자..그 때부터..
아, 그렇구나..한다.

소니 디카로 사진을 찍으면 파일 이름이 DSC...로 시작한다.
그러나 팔천이로 찍으면 일반...로 시작한다.
처제가 놀란 것은 그걸 몰라서가 아니었다. 내가 알려준대로 사진을 구분해 보더니

'오머, 행부, 이게 저 핸펀으로 찍은거야? 오머 오머..'

약간 비약된 것일수는 있지만, 굳이 전문가가 아니라면 소니 디카로 찍은거나 팔천이로 찍은거나 포샵에서 약간 손만 보면(잘 보면) 큰 차이가 없다. 출력만 안한다면 말이다.
처제는 새로 샀다는 그 소니 얇은 디카를 나한테 준 그 두꺼운 디카랑 다시 바꾸자고
한다. 애가 따로 없다.
하지만 시스터 인 로우 아닌가.
난 변호사 친구도 없고 친척 중에 판검사도 없다. 몸사려야지.

'아냐, 그게 셋팅을 안해줘서 그럴꺼야'
사람이 입이 웬수다. 그날 저녁 내내 셋팅 잡아주다가 머리털 빠지는줄 알았다.
사람 편하라고 만든 소니 그 얇은 디카는 진짜루 편해서 셋팅할 것도 없었다.

팔천이랑 바꾸자고 막판엔 떼를 쓰길래 딱잡아떼고 일단 집으로 튀었다.
오는 길에 마누라가 신기한듯 내 팔천이를 만지작거렸다.
지금껏 내 팔천이를 그렇게 정감있게 만지작거린 적이 없었던터라
신기해서 왠일이냐고 그랬더니...

잘사는 동생한테 늘 지는 기분이었는데 팔천이가 오늘 기좀 살려줬다고..
그래서 이뻐서 그런다고 했다.

그래서 내친 김에 내가 한마디했다.
'거봐...잘나고 똑똑한 남편 두니까 기살지?'

본전도 못찾았다.
'근데 돈은 왜 못벌어?'
'.....'

풀죽어서 오는 내가 안되 보였는지 오는 길에 화장실 간다고 잠깐 내렸을 때
팔천이를 뺏어서 애덜하고 나하고 사진을 찍어준다.
다시 차에 타고 오는데 한참을 팔천일가지구 재차 만지작 거리다가
마누라가 한마디 했다.

'자갸..나한테는 이게 재산이야..알지?'
마누라 손에는 내 팔천이와 함께 약간은 기죽어 있지만 환하게 웃고있는 나와 아이들의
모습이 박혀있었다.
인생은 돈이 최고가 아니다. 가난하고 부족하더라도 억만금을 주어도 살 수 없는
'사랑'이 있으면 부자다. 행복한 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