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전의 참맛! SC-8000을 다시본다-8

오션지 2010. 10. 2. 14:05
큰일이 났다.
팔천이를 따라왔던 꼬작댕이를 분실했다.
손 작은게 이쁜건줄 알고 자기한테 딱 맞대나 어쨌대나 하던 마누라가 이 꼬작댕이를
결국 분실해버리고 말았다.

평수가 작은 집이라고 찾기 쉬울줄 알겠지만 그 집에 무슨 물건들이 어떤 모양으로
자리잡고 있는가가 큰 변수이다. 사막에서 바늘찾기라는 말은 우리 집에서 볼펜 찾는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 꼬작댕이가 볼펜만한가 어디.
가뜩이나 손가락에 쥐날 판에 그 꼬작댕이를 사용하자면 팔천이 얼굴을 조금 긁는것도
같고 찌르는 것도 같은 묘한 느낌에 오장육보가 바르르 떨리던 것을 생각하면
차라리 잘 없어졌다 싶기도 하지만 며칠전에 보호지 사다 붙인걸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이제는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이 꼬작댕이를 대신하고 있다.
큰 아들 연필은 이미 고참이 되지 오래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좀 밝히고자 한다.
우선 내 방에서는 워낙 정신 없는 곳이라 손이 잡히는게 스타일러스 노릇을 한다.

드리이버...좀 굵긴해도 손이 딱 잡히는 그 기계적 휘일은 실로 남못잖다.
귀후비개...내가 취미가 귀후비는 것인데 끝에 나사처럼 휘말려 있는 이 진기한
물건이야말로 톡톡히 제몫을 한다. 일석 이조란 이럴때 쓰는 말이다.
이쑤시개...쓴 것이라면 위생상 안좋은 것이 사실이지만 안쓴 이쑤시개는 스타일러스라고 보아도 무방할 터.
와콤 펜...내 그래픽 작업에 사용하는 귀하디 귀한 와콤 스타일러스는 단연 우세한 꼬작댕이
라고 보아야 할 것.

이제까지는 그런대로 모양새를 갖춘 것이건만, 내가 생각해도 예전 꼬작댕이한테 좀 미안
할듯한 여러 물건들도 스타일러스 대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웬만하면 하나 사지 그렇게 주접을 떠냐고 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하루에도 수십번씩
사야지..사야지...하면서도 못하는, 아니 안사는 이유는 없어진 꼬작댕이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이 상상외로 많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또한 큰 재미라 그렇다.

나는 젓가락도 사용해보았고 숟가락 대가리도 사용해 보았다. 아주 잘 되었다.
볼펜은 양반이고 십지어 헤드셋에 보면 있는 입출력 단자 있잖은가, 그것도 쓸만했다.

좀 굵은 것은 각도만 잘 조절하면 그나마 훌륭하게 작업을 해낼 수 있다.
물론 그 굵은 것에는 마누라 새끼손가락과 나의 어여쁜 엄지도 포함된다. 어제는 내 책상에 있는 도루코 칼도 이용해보았다. 팔천이를 이렇게 혹사하는 것이 안된 일이기는 하지만
이없으면 잇몸이란 말이 어째서 진리인가를 직접 체험하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역시 진리는 본인이 직접 체험하고서야 옳다고 인정할 수 있고 내치면 남에게도
권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의 자랑거리는 바로 다음의 예에 있다.

아는 분은 알겠지만 볼일 볼 때 화장실에 책 가져가는 사람들이 꽤있다.
이것도 편집증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정신과 의사들이 있는데
화장실에서 편집할 일이 뭐가 있다고 그러는지들 모르겠다.

다만,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으로서 화장실에서 책을 읽을 뿐이다.

*화장실에서의 독서는 항문 건강에 좋지 않으니 사용자의 주의가 요구됩니다*

물론 변비가 생길 염려가 있지만 이걸 잘만 이용하면 오히려 건강에 좋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갈 때 신문 내지는 책을 가지고 들어가는데 당연히
좋은 내용만 골라 읽는다. 그게 건강에 좋기 때문이다. 빨리 나올수도 있고..
그런데 팔천이를 가지고 들어가면 여간 조심스러운게 아니다.
일단, 볼 일을 볼 때 팔천이가 신경이 쓰여서 잘 안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법이 있다.

자신에게 가장 자신있는 게임을 하면 된다.
보드 게임류를 가지고 들어가서 조용히 그러나 신나게 게임을 하면
볼 일도 아주 잘된다.

그런데 며칠전 문제가 생겼다.
팔천이를 가지고 들어갔는데 그만 꼬작댕이 대용을 가지고 가지 않았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임을 발견한지가 이틀만이었고 초등학생인 아들놈이
일곱판까지 가면서 나를 노땅 취급을 하질 않나, 마누라가 어쩌다 장님
문고리 잡는 식으로 팔단계까지 간 것을 가지고 논두렁 개구리마냥
좋아서 팔딱거리는 꼬락서니를 보는게 서러워서 내공 수련을 쌓아
이젠 거뜬히 구단계까지도 갈 수 있게 된 그 문제의 게임(밝힐 수 없음을..
다만, 다이아몬드처럼 된 색색의 작은 알갱이들이 오른쪽에서 밀려나오면
그걸 짝맞춰 없애는 게임이랍니다)을 나의 볼일과 더불어 시원하게 보려고
했는데...

화장실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사실 꼬작댕이 대용으로 쓸만한게 없었다.
샘푸 뚜껑도 그렇고, 맨도기도 그렇고..빗이 있긴 하지만 죄다 끝이 마누라
엉덩이같이 펑퍼짐한 것들이라 가망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내가 해낸 방법은 화장지를 아주 가늘고 단단하게 여러겹으로 말아서
빳빳하게 만든 다음 그것을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그날 볼일을 그래서 좀 길어졌다.
화장지 마는데만 해도 꽤 시간이 걸렸고 이어 게임을 하는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의 시간을 빼앗았던 것은 그날따라 모두 네 판에서 자꾸만
끝나는 것이었다. 이론 젠장...

마침내 화장실에서 나오는 나를 보고 마누라는 '샤워했어?' 한다.
그러나 내 손에 턱 걸쳐져 있는 팔천이를 보고는 무슨 짐승보듯 했다.
'이게 사람인가...'

아직도 나는 팔천이 꼬작댕이를 사고 싶지 않다.
좀 더 새로운 것을 찾아보고 더이상 없다 싶을 때 새로 하나 사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