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참 간사한 면이 있다.
언젠가 보았던 버터플라이라는 작은 책자에서처럼 마냥 일등을 향해 달려가다
마침내 정상에 다다라보니 내가 일등이 아니라 나도 수많은 일등중의 하나였을 뿐이라는...
고진감래라고 힘겹게 얻은 승리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나의 자랑스러운 팔천이는 나를 엿먹이길 수차례...이걸 집어던질수도 없고 고통을
감내하자니 혈압에 중풍이 찾아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아내는 내 이런 꼴이 마냥 신기하고 즐거운 내색이다.
그 맛있는 된장찌개를 마다하고 방콕에 미쳐있는 내가 한심스러운 것일게다.
어쨋거나 나는 팔천이와의 씨름을 계속해야 한다.
며칠 전의 일이었다.
팔천이 살 때 따라오기로했던 산품(사은품)이 낙동강 오리알이 됐다가 어느새
변태를 해서 내 집앞에 떡하니 와있는 것을 보고 어찌 눈물이 앞을 가리지 않았으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빡스를 으깨다시피 열어젖히니 그토록이나 기다렸던
가죽 케이스하고 메몰하고 충전기가 들어있었다.
나는 본래 물건 자체보다는 물건이 지니는 의미를 더욱 중시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워낙 반가운 마음에 우선 가죽케이스를 꺼내들고 가죽의 냄새를 만끽했다.
'먼 미친짓인고?' 하는 눈길로 째려보는 마누라를 무시하고 가죽케이스에
팔천이를 끼우는 순간!
테크노마트 지하부터 8층까정 이잡듯이 뒤져도 찾지못했던 삼송이의 가죽 잠바와
달리 나의 팔천이에게 딱 맞는 가죽 케이스를 입히고 나니 그동안의 설움은
6.25쩍 이야기로만 여겨졌다.
똥폼이라고 아는가..
남들도 멋있다고 해야 그게 진정한 훠옴이다. 지 혼자 내는 것을 똥폼이라 한다.
마누라는 삼송이네 집주인한테 따진다고 하지만 어디 그게 될법한 소린가.
고대광실 대갓집들은 하찮은 우리 평민들을 지나가는 똥*보다 못하게 여기는게
울나라 현실인데 울 마누라가 미스코리아쯤 되서 테레비에 삼송이 델고 함 나오지
않는한, 삼송이네서는 눈도 꿈적 안할 일이다.
암튼 삼송이 가죽 잠바는 구할 길이 없고, 그거야 내 알바도 아니고
내 팔천이 옷입힌게 나는 무쟈게 기특했다.
그런데 새옷 증후군이라고, 신발도 새로 신으면 뒷꿈치가 까지듯 팔천이가
가죽 잠바를 입고는 똥꼬에 바지가 끼이는지 영 불편해했다.
'쫌만 참자. 사람이나 짐승이나 새집에 들어가면 다소간의 적응기간이
필요한 법! 곧 빳빳한 가죽잠바가 노골노골 녹아서 흐르적거릴때쯤이면
생활한복 못잖게 편한 것이여..'
하지만, 워낙 각잡힌 가죽잠바라 팔천이 목소리 키우기도 불편하고
전화받을때도 기본 설정으로는 어색한 면이 좀 있었다.
암튼,
그 담으로 내가 착수한 팔천이 기살리기 작업이 바로 메몰 추가다.
사람도 주머니가 든든해야 목소리도 커진다. 어디가서 지갑한번 제대로
못꺼내서야 어디 남자 체면이 서던가!
팔천이가 그동안 갖은 설움을 당하면서도 에헴, 하고 헛기침 한 번 제대로 못한
까닭도 바로 지갑이 든든하지 못해서였다.
그런데...이제 로또 부럽지 않은
512억에 달하는 거금이 수중에 들어오자 팔천이는 감당을 못했다.
아니, 진짜로 감당을 못했다!
돈은 주는 사람이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받는 사람이 자질이 안되서도 문제다.
내 팔천이의 주인으로서 팔천이를 부끄럽지 않게 하려고 이 나이에
마누라와 이혼직전까지 갈만치 투쟁을 거듭해서 얻어낸 희박한 지식으로
팔천이를 기살리려고 그토록 애썼건만 문제는 팔천이 만든 사람들이
나하고 전혀 콤뮤니케이숀이 안되었다는 점이다.
512억의 거금을 먹이자 팔천이는 지멋대로 행세했다.
이제 내 말은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라고 여겼다. 시도 때도 없이 무반응이다.
얼러도 보고 달래도 보고, 겁도 주어보았다.
별의 별짓을 다해도 팔천이는 지멋대로 행세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팔천이는 지멋대로 잠을 청하여 아침에 내가 깨웠을 때는
'누구세요?' 상태까지 와버렸다.
안면몰수라니...
옆구리 만질때마나 전기뱀장어마냥 전기를 빠지직 쏘아댈때마저도
끊을 수 없는 첫 정이란게 있어서 심장에 안좋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참아가며 도라무깡통같은 지 허리를 그렇게 부여잡고 밤을 새었건만...
아침에 일어나 남보듯하고 내가 저에게 남겼던 애정의 여러 증표들을
싸그리, 몽땅, 일격에 날려보낼 줄이야...
남자는 간혹 새 여자를 만나는 것을 행운으로 알 때가 있다.
그러나 나이 먹으면 먹을수록 조강지처가 최고라고 다들 그런다.
팔천이도 조금 짝궁뎅이고 둔해서 반응이 느리고 그래도 아까의 그 첫 정이란게
있어서 쉽게 손에서 못떼는게 조강지처 대하는듯하는 내 심정인줄을 팔천이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
결국 나는 팔천이의 목을 졸랐다.
죽이진 않고 기절만 시키자! 모든 살인의 시작은 이렇게 되는 것이리라!
목을 꽉 쥐고 똥침 한 방에 팔천이는 새로운 인물로 다시 태어났다.
이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 마누라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날 밤에 시름시름 앓더니 몸살에 현기증이란다. 아마도 내가 팔천이를 대하는
꼴을 보고 지레 겁을 먹은 모양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을...
사람이 똥침 놓는다고 기절하겠는가...
팔천이가 이렇게 기절하고 다시 깨어난 이후, 나의 팔천이는
조금씩 이상한 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변화는 새로운 것이지만 동시에 두려운 것이다.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전의 참맛! SC-8000을 다시본다-8 (0) | 2010.10.02 |
---|---|
고전의 참맛! SC-8000을 다시본다-7 (0) | 2010.10.02 |
고전의 참맛! SC-8000을 다시본다-5 (0) | 2010.10.02 |
고전의 참맛! SC-8000을 다시본다-4 (0) | 2010.10.02 |
고전의 참맛! SC-8000을 다시 본다-3 (0) | 2010.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