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시작을 우연으로 만들어버리는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다.
세간의 존경과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스티븐 호킹 박사는 우주를 우연히 발생한 결과물이라고 단언한다. 결국 그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것은 우연의 결과물이다.
비참하기 이를데 없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더 이상 목적없이 살아도 된다. 추구하는 바 없이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차피 시작이 우연에서 출발한 것이니 우연으로 끝나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이 지독한 궤변을 어떻게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을까?
단순히 생의 마감을 얼마 남기지 않은 노 학자의 숙명적 결론이라고 치부하여야 한다는 말인가.
그럼, 그 우연은 어떻게 이 수많은 필연을 낳았을까? 우연에서 출발하는 필연이라...헛 참...웃기를 논리다.
필연이 우연을 낳을 수 있을까마는...우연 역시 필연을 낳을 일이 결코 없는 법이다.
세상이 그렇게 우연에 의한 우주 대 폭발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한마디로 살아 무엇하는가!
의미 없어지는 것이다. 이 세상을 정의와 기준에 따라 살아낼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뭐, 그까짓거, 어차피, 되는대로, 그냥, 아무렴...등등의 단어들이 우리 인간의 삶을 지배하도록 해야 스티븐 호킹의 주장은 제대로 빛을 발하게 된다.
그래, 그렇다 치자. 우연히 인간의 근원이 생겨났다고 치자. 그 근원을 깨닫게 되는 것은 인간이지 이것 역시 우연한 발견은 아닐터. 자기 본질의 근원을 깨닫는 이 신비로운 인간의 이성은 어디서 온 것인가...수 억만년의 거리와 알 수 없는 공간을 가진 우주라는 이 공간 아닌 공간을 떠돌던 어떤 우연한 지성이 인간을 찾아온 것일까?
스티븐 호킹은 자기 인생의 결말을 앞두고 너무 경솔한 결론을 내리고 만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생각이 우주를 떠돌다가 어느덧 지구로 돌아와보니 자기 현실이 직시되었나보다.
과학과 종교가 화해할 수 있느냐는 사회자의 멍청하기 그지없는 단무지 질문에 그 역시 우문으로 대답한다.
"과학은 관찰에 의지하지만 종교는 권위에 의존하기 때문에 과학이 승리할 것이라고 본다"
한 시대를 이끌던 석학의 머리에서 나온 결론치고는 참 괴로우리만치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인간 이성을 최고의 기준으로 외치던 칸트도 결론적으로는 인간 이성의 불완전성을 직시할 수 밖에 없었다.
완전한 인간 이성의 결과물이 불완전이라니..이것부터가 이미 문제가 있는데도 인간은 자기 이성의 완전을 확신하기까지 할뿐 아니라 확신하려고 노력한다. 인간이 완전한 이성을 가지지 않았다면, 인간은 판단하는 모든 것에 자기 확신이란 있을 수가 없다. 내가 가진 자ruler와 타인이 가진 자ruler가 서로 같다는 공통의 진리가 있는가. 인간 이성의 다양함을 뛰어넘는 절대적 이성이 있단 말인가.
그걸 찾기 위해 노력한 붓다는 해탈이라는..결국 찾을 수 없는 어떤 상태, 아니, 찾았다고 믿는 어떤 상태에 도달하게 되고 그것을 포기, 불교에서는 해탈이라고 하지만, 그 포기를 공으로 이해하고 그 공의 경지에서 모든 인간은 본질의 상태에 도달하게 되고 궁극의 안도에 있게 된다고 결론내린게 아닌가.
기독교는 그에 반해 보다 적극적인 궁극의 이성에 도달한 상태를 사랑이라고 표현하지 않는가.
어느 길을 가든 궁극에 도달하면 그것이 절대적 지성이고 완전한 이성인데 그런 완전한 이성을 깨달을 수 있는 인간이 어디에 있는가.
불교의 포기나 칸트의 순수이성이 이 깨달음에 도전한 결과라고 하더라도 결국 인간은 상당한 불완전의 노력을 통해서 이 이성에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완전한 이성을 가진 존재인 인간이 완전한 이성에 도달하기 위해 이렇게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면 그것은 완전한 이성이 아니다.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어떻게 완전함을 스스로 찾을 수 있는가.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다. 불완전한 존재가 완전을 발견하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오만의 극치다.
차라리 불완전을 인정하는 것이 보다 완전에 가까운 것이다. 적어도 불완전한 자신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완전한 이성의 한 조각이라도 될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런데 스티븐 호킹은 인간 이성이 종교를 앞설 것이라고 말한다. 맞다. 우선은 그렇다. 적어도 그가 종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그 상태에서는 충분히 그렇다. 하지만 종교는 그가 말하는 것처럼 권위로 그 상아탑을 쌓아놓고 제물을 바치는 그런 변질적 존재가 아니다. 그는 종교 자체를 본 것이 아니라 종교 현상을 보고 마치 종교를 다 본것처럼 말한다. 이슬람 본질을 이해 못하는 사람은 이슬람이 테러리즘 종교라고 생각한다. 단지 일부의 종교적 현상을 보고 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슬람의 본질은 평화와 공존이다. 기독교의 천주교나 개신교의 현상을 보자면 역시 권위와 독선일 수 있다. 마치 인간 이성을 마비시키고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현상들을 추구하는 집단 히스테리로 보여진다는 것이다.
스티븐 호킹은 그런 현상을 종교라고 보았고 그 안에서 보이는 권위가 전혀 이성적이지 않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잘못 본것이다. 종교의 본질을 망각하지 않고 본질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할 교회들이 스스로 종교적 현상을 부추긴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워도 대부분의 종교는 여전히 본질적인데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이 지구를 이끌어가고 있다.
이성의 승리는 요원한 것이다. 불완전한 이성이 그 한계성을 가지고 우주의 기원을 밝히고 규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광오한 교만이냐는 말이다. 그토록 위대한 이성은 겨우 지구라는 한 덩어리 땅 위에서 반짝거리다가 사라지고 만다. 한마디로 날지 못하는 새가 마치 전 우주를 다 여행한 것처럼 오만을 부린다는 뜻이다.
그처럼 위대한 이성은 왜 육체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자기 불완전성을 인정하기 꺼려하는가.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제공하는 해탈이나 기독교가 제공하는 사랑의 교리 모두가 바로 불완전한 이성에 대한 해답 제시이다.
불교는 다만, 영원한 세계와 보다 주관적이고 직접적인 어떤 대상으로부터의 지식 전수가 아닌, 자기 내부로부터의 지식 발견이란 점에서 한계성을 뚜렷이 가지고 있지만 기독교는 외부로부터의 지식, 즉 구원이라는 것과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지식을 제공받는 것이고 이것은 인간의 주체적 권한을 제한하거나 또는 축소하는 듯한 생각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다.
외부로부터 온 것은 인간의 판단 여부를 떠나서 그 진정성과 완전무결함에 대해 스스로 주장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인간 내부로부터의 주장은 그 진정성이나 진리성을 담보할 어떤 것도 없다. 이런 문제점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스티븐 호킹은 광대한 우주를 바라보며 자기 한계성을 절감한 나머지 인간 이성의 반발로 그 이성의 최고의 결과물은 과학이라는 이름을 빌어 최후적으로 절대적 진리에 반기를 들어본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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