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이시습지

학교 성교육의 문제점-아름다운 성을 가르치자

오션지 2010. 6. 29. 20:17

자꾸 터진다.

이제 이런식이면 아예 불감증에 걸려서 성폭력이니 뭐니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하나의 문화가 되지나 않을지 심히 걱정이다.

나이와 직업, 장소와 시간에 관계없이 여기저기서 정신적으로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성폭력을 행사하고 다닌다.

딸 키우는 내 입장에서는 정말 남의 일 같지 않고 내 딸 뿐 아니라 내 자식들도 똑바로 교육시켜야 하겠다는 생각이 가슴속 깊은데서부터 치밀어 오른다.

 

요즘 아이들이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고 있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정말로 제대로 된 성교육이 이루어지는지는 정말 의문이다.

성이란,

아름답고도 소중한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각기 독립적으로 자라나고 자신의 몸을 성장시켜가면서 소중하게 관리하며 서로의 짝을 만났을때 아름답게 사용해야 하는 것이 성이 아닌가.

그렇게 서로에 대한 책임을 다하며 준비하는 것이 마땅하고 언제 만날지 모를 나의 반쪽을 찾아 숭고한 여행을 떠나는 것이 곧 성인의 일상인 것이다.

자식을 낳아서 종족 번식을 하기 위한 것이 성의 최대 목적은 아니다.

남녀 간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친밀하고 분명한 행동이 바로 성적 행동이고 성행위인 것이다.

그렇게 서로의 몸을 존경과 애정을 담아 어루만지고 기쁨을 느끼게 해주며 말이 아닌

육체의 대화를 함으로써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존재에 대해 보다 더 깊게 이해하게 되고

표현할 수 없는 만족감을 가지게 된다.

 

성적인 표현에 있어서도 책임과 의무가 공존하며 양보와 이해가 선행되는 범위 내에서는 어떤 행위도

성의 행위에 있어서 금기시될 일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할 아름다운 성의 모습이고

존중받고 보호받아야할 사생활이 아닌가.

 

그러나 요즘의 성교육은 이렇게 아름다운 성의 형이상학적 의미를 가르치기보다는

당장 시급한 성행위의 결과에 대해서만 가르치기 급급한 것같다.

왜 아이들은 성을 배우면서도 성에 대해 좋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인식보다는

성이 위험하고 조심해야할 어떤 것이고 여자는 무조건 성적인 보호를 받아야 하며

남성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가져야 한다는 식으로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요즘 걸핏하면 성폭행이다, 성추행이다, 입에 달고 다닌다.

나는 학원을 하고 있으니 아이들을 접할 기회가 많고 전혀 의도치 않게 아이들의 몸과 접촉될때가 있다.

차에 타는 아이들이 위험할까봐 손을 잡아준다든지, 학원 문을 열고 들어갈때 어깨를 살짝 밀어서 응원해준다든지 하는 행동에도 아이들은 섬칫하며 성폭행이니, 성추행이니 하는 말을 서슴치않고 해댄다.

물론, 평소에 내가 격이 없이 대하는터라, 또 동네에서는 다 아는 사이고 부모간에 왕래가 있는 집안이기에 쉽게 생각해서 농담삼아 하는 말이라고는 하지만 듣는 내가 손이 움츠러들 지경이다.

괜히 내 마음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생기고 죄책감같은게 들때도 있다.

 

아이들이 몸이 크다보니 이제는 함부로 손을 잡는 것도 하면 안될 일이다. 게다가 옛날과 달라서 요새는

초등학교 4학년 정도만 되어도 꽤 성숙한 편이다. 그러니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하지만 무의식이 무서운 법이다. 아이들 귀여워하는 내 본성은 속이지 못해서 머리 쓰다듬는건 예사로운 일이다.

거기다가 학원이 찻길 옆이다보니 늘 아이들 걸음걸이에 신경이 쓰이고 위험한 생각도 들어서

길을 건널때에는 무의식적인 보호 본능으로 아이들 어깨를 잡게 된다.

그런데, 이것도 성추행일까?...

 

참 갑갑하다...

어쩌다 세상이 이지경이 되었는가.

아이들 셋을 낳고 살면서 내 아이, 남의 아이 할 것 없이 동네 돌아다니는 아이들은 다 내 자식 같고

우리 아이들 친구들은 모두 가족 같은 마음으로 대해왔는데 그게 성추행이라는 위험한 행동의 시초가 될 수도 있다니 앞이 캄캄하다.

게다가 언론에 나온대로 성추행범의 대부분이 면식범이고 아이들이 쉽게 경계심을 늦출 수 있는 주변 사람이라니 참 학원 사업도 해먹기 어려운 사업이다.

애들 상대로 하면서 애들 대하기를 무슨 고려시대 청자 대하듯 해야하니 말이다.

 

사실상, 성추행과 친밀한 행동 둘 사이에는 백짓장 한 장 차이밖에 거리가 없다.

아이들의 귀여운 행동에 볼 한번 꼬집어주는 것을 친밀한 행동이라고 한다면

그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는 건 성추행일수도 있다.

감정의 문제이지 행동의 문제는 사실상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 감정이 주체할 수 없는 폭력으로

변하면서 성추행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과 아예 멀리 떨어져 행동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인것도 같다.

 

학교에서 보건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성교육을 할때 불특정 대상이긴 하지만 낮선 남자, 아저씨, 오빠 등으로 대상을 규정지어 성추행관련 예방 의식을 심느라 애를 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아이들은 아름다운 성을 배우기 보다는 조심해야할 성을 먼저 배운다.

 

진정한 성교육은 아름다운 성이 되어야 옳다.

성교육을 하면서 남자와 여자의 기관의 차이를 가르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데

어디서 사고가 났다 하면 부랴부랴 평소에 안하던 성폭력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그 내용이란 것이 결국 성이란 위험성을 다수 내포한 것이라는 사상을 어쩔 수 없이 주입하게 되고 만다.

그렇다면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서 커서 어른이 되면 과연 사랑하는 사람과

아름다운 성의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감정이 이성을 앞지르는 젊은 청춘의 푸르름은 물론 이 때만큼은 아름다운 성을 꿈꾸게 되고

또 실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뇌리 속에는 성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 자리잡고 있고

폭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기 쉽다.

이것이 적극적으로 성을 즐기지 못하는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고 결국 아내와 남편은 부부이면서도

진정한 사랑의 관계에서만 충족되는 성의 기쁨을 맛보지 못한 채 아이들 키우는 나날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이다.

 

왜 우리는 아름다운 성을 보다 더 많이 가르치지 않는가.

왜 남자들을 막연한 성폭력의 주체로 여기도록 아이들에게 가르치는지.

성교육 시간이 꿈꾸듯 포근하고 희망찬 시간이 되지 못한채 무슨 반공 교육하듯이 할 필요는 없다.

'학이시습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무원 수험서-과학 추천  (0) 2013.02.03
내 아이 일등 만들기-1  (0) 2011.05.08
6.25 가르치지 않는 교육현장  (0) 2010.06.21
바벨탑에 갇힌 복음  (0) 2010.06.18
조엘 오스틴 신학의 문제점?  (0) 2010.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