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이시습지

조엘 오스틴 신학의 문제점?

오션지 2010. 6. 17. 22:50

며칠 전 책을 하나 만났다.

제목은 바벨탑에 갇힌 복음이다.

원제는 Christianity in crisis다.

위기에 처한 기독교라고 할수 있다.

내용이 궁금해서 책을 들었다. 그리고 읽어가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우선, 오래 전에 읽었던 베니 힌의 안녕하세요, 성령님, 이라는 책과

또 오래 전에 읽었던 긍정의 힘이라는 조엘 오스틴의 책이 생각났다.

베니 힌의 책을 읽을 당시에는 지나친 신비주의적 색채 때문에 거부감이 일어

중간만 보고 책을 접었던 기억이 있다.

조엘 오스틴의 책은 요즘 나오는 자기 계발 서적 같은 느낌이 많이 들긴 했지만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개념들이 많이 동의가 되어 끝까지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유명했던 책이 또 있었는데 바로 시크릿이다.

시크릿의 내용은 이미 전에 수도 없이 많이 나왔던 자기계발서들의 총망라 작품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역시 대지만 살펴보고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기독교 TV에서는 자주 조엘 오스틴의 설교를 볼 수 있다.

쉬우면서도 간결하고 핵심이 뚜렷한 그의 설교는 성경과 영어 공부를 같이 하고 싶어 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특히 매력이 있다.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단정한 그의 모습과 확신있는 제스처, 그리고 성경에 대한

자신감 넘치고 전혀 진부하지 않은 해석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엄청나게 큰 교회와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이미 어느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는 아성을 쌓았다고 봐야 옳은 조엘 오스틴을

이 책의 저자는 단연코 이단으로 결정짓고 있다.

그 근거를 조목조목 자세히 나열했기에 책 말미에 있는 참고자료를 일일이 살펴보며

비교하고 확인하는데만 해도 꽤 시간이 필요했다.

이 책의 저자는 조엘 오스틴의 가장 큰 오류 중 하나를 성경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 꼽는다.

특히 38년된 병자에 관한 오스틴의 해석은 다분히 성경의 핵심 맥락과 전혀 잇대어있지 않은

자의적 해석이라는 것이다.

또한 내가 찾아본 유튜브 동영상에 나오는 오스틴 목사의 인터뷰들에서는

실로 놀랄만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다.

자신의 말이 아니면 옳지 않다고 한다든지, 유대인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한다든지 하는..

엄청난 파장을 가져올만한 심각한 사상들을 얼버무리는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그의 대답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몇 마디는 늘,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일입니다. 나는 거기에 대해 말할 권리가 없습니다.

이리 가라고 하던지, 저리 가라고 할 권리가 저에게는 없고

하나님이 옳다고 하시면 옳은 것입니다..

 

이런 논리다.

우습다.

목사가 분명한 복음적 가치기준을 갖지 않고 성도를 이끌 수 있는가.

그냥 말만 긍정적으로 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진다는 그런 개념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성경의 수많은 예를 살펴보지 않아 정확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오스틴이 주장하는 긍정의 힘은 하나님의 힘이 아니라 내 안에서 나오는

나의 힘이다.

인본주의에 근간하지 않고는 이런 얘기를 할 수 없다.

죄인된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움직여지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

이걸 가지고 로봇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냥 그렇게 알고 사는게 편하다.

오스틴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음을 받은, 적어도 예수님의 능력으로 나음을 받은

38년된 병자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는 그 병자가 긍정적인 말과 긍적적인 마음가짐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그 꼴로 살아왔다고 본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서 그의 말이 바뀌었고 그렇게 말하자 그가 나음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중요한 오류가 지적되어야 한다.

그럼, 그 38년동안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낫지 못한채 기다리고 있던 이 병자가

예수님을 만나 긍정의 힘으로 나음을 받았다면,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했을까?

'나는 여태 긍정적인 마음과 말을 하지 않아서 이렇게 살았는데

예수님을 만나서 내 마음이 긍정이 되고 말이 바뀌어지자 이렇게 나았다.

여러분도 긍정의 힘을 믿어라..'

이렇게 말했을까?

 

예수님을 만나서 병고침을 받은 사람들의 후기를 성경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일치되는 몇가지 상황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병나음이나 새생명이나 고침을 얻은 수에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하고

다녔는가 하는 점이다.

그들이 전한 것은 '긍정의 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였다!

 

오스틴은 예수 그리스도나 하나님을 긍정의 힘과 교묘히 연결지어 말하면서도

언제나 주제가 되는 것은 그의 주장인 '긍정의 힘'으로 귀결되고 있다.

그가 이단시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성경을 이상하게 뉴에이지 운동의 그것과 유사하게 해석해서 연결짓고 있으니 말이다.

뉴에이지란게 다른 것이 아니다.

어떤 외부의 힘이 아닌 자기 내면의 힘을 원천으로 삼는 정신적 훈련이 아니던가.

인간 내부에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자연적 힘과 연결지으면

인간은 곧 자연의 흐름에 동화하게 되고 무아지경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며

고통과 슬픔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이다.

불교의 교리와 유사할 뿐 아니라 자연신학의 왜곡된 정신에도 일맥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이 설득력이 있는 이유는

다원주의와 함께 더욱 창궐해진 인본주의, 즉 인간중심적 사고방식, 혹은 인간정신 제일주의에서

출발한 이 철학들이 인간을 고귀하고 위대한 존재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은 언제나 죄인이고 부족하고 죄를 짓고 모자란 존재요

끊임없이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을 수 밖에 없는 종속적 존재로 여겨진다.

그러나 뉴에이지 정신은 이러한 종속관계를 끊고 인간 스스로가 우주적 존재라는

인식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상이다. 그러다보니 기독교의 구원 교리나

인간 원죄론, 예수의 십자가상의 죽음 등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비굴하기까지 하고 형편없는 패배주의적 망상 같으면서도

인간을 끊임없이 비참하게 만드는 교리로 이해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뉴에이지 정신에 따라 이토록 위대한 인간 정신은 지구 종말이 운운되는 지금까지도

인간 스스로를 구원해낼만큼 그 위력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주적 깨달음을 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인간의 위대함은 언제쯤 밝혀질 것인가!

전쟁을 통해 수백만명을 가차없이 살해하고 강간을 일삼으며 살인과 강도를 하는

인간의 이면은 저 위대한 긍정의 힘에 너무나도 극렬히 비견되는 자아상이 아닌가.

 

결국 오스틴의 주장은 잘되는 나로 귀결된다.

성공주의적 귀결이 아닐까. 미국 경제의 파탄과 사회 혼란, 그리고 오랜 전쟁과

인종차별에 의한 갈등, 그리고 온라인의 발달로 인해 알게되는 정부의 이기적 정책들.

그리고 동,서양의 문화적 교류에 의해 미국이나 한국이나 모두 동일한 의식적 혼란기에

접어들어 있는 상태에서 오스틴의 긍정의 힘은 어쩌면 유일한 탈출구일지도 모른다.

 

성공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오스틴은 안되는 일도 긍정적인 말을 함으로써 현재 아무 재정적 걱정 없이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이루어냈다고 말한다. 그의 설교를 들어보면 자주 재정 위기, 또는 대출,

또는 이자, 경우에 따라서는 파산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일까.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외친다.

그러나 어떻게 의지하는지에 관해서는 항상 믿음, 긍정의 힘을 말하곤 한다.

 

하긴, 좋은 말, 긍정적인 말을 하는것이 나쁠게 뭐가 있나.

매일 인상쓰면서 지내는것 보다는 잘될거야, 난 성공할 수 있어 하고

자꾸 말하면 기분도 좋아지고 매사가 긍정적인 삶으로 바뀔 수 있는데

그게 뭐가 잘못인가..하고 말할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과 복음의 관계를 연결지으면 안된다는데에 문제가 있다.

성공적인 삶과 예수님의 십자가, 그리고 그 분이 흘린 피를 매치시킨다는 건

여간 어색한 일이 아니다.

피와 성공, 그리고 무덤과 성공, 어떻게 연결지어야할지 모른다.

이 딜레마를 오스틴은 자기만의 독특한 해석으로 해결하려고 하는데

그러다가 자가당착에 빠져서 래리 킹과의 인터뷰에서 엄청난 실수를 하고 만다.

 

얼마전에 친구 목사가 남아공의 어느 목사로부터 치유 능력을 보고 심취하여 그 쪽에서

배우고 있는 것을 보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그 목사의 홈페이지에 손바닥을 하나 그려놓고 그걸 다운받아서 지켜보며 기도하면

병이 낫는다고 하는 것을 그 친구가 믿는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다.

한때 치유 사역으로 유명했던 베니 힌의 치유 사역이 허황된 거짓이었음이

만천하에 알려지고 그의 종말 예언도 엉터리였다는게 알려진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오스틴 목사의 신학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제기되어

일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기존 전통 교회의 각성이 또한 필요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좀 더 연구해보고 확신이 가면 따라갈 수 있는 길이라도 다시 한 번 검증해보는

노력이 요즘은 너무 없다. 그저 내 입에 딱 맞는 달콤한 설교나 사상이 있으면

그게 뭐가 되었든지간에 일단 덥썩 받아먹고 보는게 요즘의 사람들의 상태다.

그만큼 갈급한 것이거니와, 기존 전통 교회는 이제 식상한 방법으로 다람쥐 체바퀴 도는 식의

예배나 신학을 가지고 고집할 것이 아니라 보다 진정성이 있고

보다 면밀하게 교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일반인들조차도 쉽게 수긍할 수 있는

채널을 마련하는 것이 정말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