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India

니자무딘 역에서 뱅갈루르를 가다

오션지 2010. 3. 30. 01:42

데리 니자무딘 역..

밤에 도착해서 혹시 헤매지나 않을지 걱정을 했는데 생각보다 밝고 또 표시가 잘 되어 있어서

오히려 길눈 어두운 나같은 사람이 서울역에서 KTX탈때보다 훨씬 편리했다.

서울역에 가면 KTX탈때 어디서 타야하는지 좀 헛갈릴때가 있다. 전광판이 있지만 번호를 보고

찾아가는게 약간 불편한게 사실이다. 직관적이지 않기 때문인데 길눈 밝은 사람들은

잘 찾아가지만 나같이 머리 나쁘고 길눈 어두운 사람들에게는 보다 더 직관적으로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예약을 미리 해서 갔기 때문에 굳이 레저베이션 할 필요는 없었다]

 

사람이 많이 없어서 심심할 정도였는데 알고 보니 시간 전에 모두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역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특히 화장실에 들어가 봤는데 나름 깨끗했다.

하지만 왜 인도 화장실은 죄다 그렇게 변기가 높은지 소변을 볼때 약간 까치발을 해야한다.

내가 키가 좀 작은 편인가...174면 그리 작지는 않은것 같은데 인도에서 소변볼때는

꼭 소변기에 위치를 맞추기 위해서 뒷꿈치를 살짝 들어야 한다.ㅎㅎ

 

 [2430열차가 뱅갈루르행 열차다]

라즈다니 익스프레스 열차다. 누군가 열차 여행이야말로 인도 여행의 백미라고 했다.

나역시 그런 백미를 맛보고 싶었지만 내 나이 이미 불혹을 훨씬 넘긴 이 때에 36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열차로 이동할 수 있을까..

정말 걱정이 많이 되는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뱅갈루르에 가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들어서 결국 당일 밤 혼자서

니자무딘 역에 서서 이렇게 사진을 찍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상한건 서울역에 서서 한참을 바라봐도 도무지 내가 탈 열차가 뭔지를 잘 모르겠던 내가 니자무딘 역에서는 한번에

보이더라는...ㅠㅠ

열차번호와 열차 명, 그리고 목적지, 출발 시간등을 일목 요연하게 볼 수 있다는게 너무 부럽다.

한국에서는 무궁화 목적지, 시간 등으로만 나오고 열차번호는 있는지 없는지...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결국 눈치껏 타야 한다는...

 

 [플랫폼으로 들어가는 입구...ENTRANCE란 단어는 여행에서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인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색상이 바로 초록색이다.

인도 특유의 즐겨찾기 색상이 있는데 전통 문양과 조화를 이루어서 언제나 음식과 비슷한 색이다.

그런데 니자무딘 역에 다소 생경한듯한 연두색 간판을 보니 참 신선했다.

그래...신선하다. ENTRANCE가 의미하는 바도 새로움으로의 초대일테지...

괜히 약간은 두려운 마음과 기대심이 합쳐져서 가슴이 찌르르해진다.

 

 서울역에도 이렇게 플랫폼 간판이 좀 시원시원했으면 한다.

왜 그렇게 작게 만들었는지..원.

누가 디자인을 했는지는 몰라도 다분히 사용자 중심이 아니라 제공자 중심이다.

그러나 인도에서 보는 대부분의 간판류, 특히 안내를 목적으로 하는 간판은 결코 작거나 불명확한 법이 없다.

도로 표지판이 나무에 가려져 있거나 길찾기가 어렵도록 되어 있지 않고 아주 직관적으로 되어 있다.

기실 내가 델리에 온지 이틀만에 시내 구경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오토릭샤 아자씨가 길을 몰라 게스트하우스를

못찾길래 내가 알려줬다. 우습지만 사실이다.

그만큼 도로 표지판이 직관적이고 어느 지역으로 가자고 하면 그냥 그 근처만 가도 기억이 난다.

서울 사는 서러움은 이 때 느낄 수 있을것 같다.

 

 

 

 

[ 니자무딘 역 플랫폼에 내걸린 승객 명단. 혹시나 내 이름이 있나 찾아봤다. 역시나 있었다]

내가 타는 객실에 어떤 사람이 타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이름만 아는 것이지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른다.

또한 여자가 타는지 남자가 타는지도 알 수 있고 이름의 성이 같은 경우 부부가 탄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라즈다니 익스프레스 승객들은 나름 델리에서도 수준이 좀 있는 승객들이다]

인도에서 열차탈때 주의 사항이라면 반드시 자물쇠를 준비해서 가방은 꼭 좌석 고리에 채워둘것. 이것이 일순위다. 그리고 마스크나 수건을 준비해서

꼭 먼지를 많이 먹지 않도록 주의할 것. 그리고 표를 함부로 내주지 말것, 기차 안에서 주는 음식중에서 찬 음식은 가능한 피할 것.

짜이나 다른 음료 중에 포장되어 있지 않은 것은 먹지 말것..등등..

수많은 주의 사항이 주어진다.

나는 달랑 애들 학교 가방 하나만 매고 열차에 타면서 그런 주의 사항에 별로 귀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

나중에 열차를 타고 안 일이지만 이 사람들은 나같은 동양 외국인에게 별로 관심조차 없었다.

나는 그냥 그야말로 이방인이었고 그들은 나의 짧은 영어에 질려버려서 결국 말도 별로 걸지 않았다.

다만, 내 옆에 앉았던 군인만 자주 말을 걸었는데 불행히도 그는 나보다 영어를 못했다.

내 앞에 앉았던 IBM엔지니어 아자씨는 나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데도 꼭 우리 삼촌뻘 되는것 같아서 엄청 쫄았는데

나중에 통성명 하면서 나이를 까자, 결국 꼬리를 내리고 조금은 공손해졌다.

내 좌석 맞은 편에 함께 탄 부부는 그냥 사이좋게 자기들끼리만 이야기하고 36시간 내내 재미있게 여행하고 갔다.

나는 열차 안에 있는 화장실을 가보고는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음식을 조금만 먹고 최대한 볼 일을 참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열차 화장실이 무지하게 더러운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열차가 섰을때 볼 일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잡는게 무척 어려웠고

흔들리는 열차에서 손처리로 볼일을 본다는 건 정말 나같은 아마추어한테는 지옥훈련이나 마찬가지였다.

혹시나 해서 한 번 앉아봤는데 하마터면 그냥 주저앉을 뻔 했다.

혹시라도 내 글을 보고 36시간 여행하실 분 있다면 미리 배를 비우고 타실것과 음식을 아주 조금만 먹는게

여러모로 신상에 이로울 것이라고 충고하고 싶다.

다만, 일부 용자분들께는 해당 사항 없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얼마나 점잖은지 내 가방 같은건 아예 거들떠도 안볼뿐 아니라 오히려 매우 친절하기까지 하다.

내가 어리버리해서 잘 모르는 것을 아주 잘 가르쳐주고 도와주려고 애쓴다.

심지어는 내가 신경쓸까봐 말도 안걸어주는 센스가 작렬하기까지 한다.

승객중에는 아주 좋은 셀룰러폰과 노트북 사용자, 문학작품을 읽는 아자씨, 유창한 영어로 장시간 비즈니스 관련

업무를 열차에서 보시는 사장님에 이르기까지...다소 수준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오히려 촌닭이었던 것이다.

라즈다니 익스프레스는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내게 참 벅찬? 열차였다.

진정한 인도는 이런데서 맛보는게 맞다.

 

[맨 위 하얀 포장 음식은 요거트같은거다. 정말 맛있고 약간 시큼한데 건강에 아주 좋은 것이란다]

식사가 나올때 미트 오어 베지터블 하길래 그냥 고기는 아무래도 볼 일에 지장을 줄것 같아 베지터불 했는데

생각보다 깔끔하고 맛도 좋아서 많이 먹으려고 했지만 사정상 그럴 수 없어서 많이 남긴게

조금 후회가 된다.

다른건 그럭저럭 먹겠는데 저 소스 같은건 정말 못먹겠더라...ㅎ  

 젊은 군인이 어찌나 맛있게 잘 먹던지 나의 아이폰이 참지 못하고 한 컷을 날려주고 말았다.

이 군인은 내가 계속 베지터불만 시키자 내가 본래 소식하는줄 알고 다음부터는 내가 안먹는 걸 그냥

알아서 갖다 먹었다. 무척 즐거워하면서...ㅠ

나를 많이 도와주었다.

헤어질때는 많이 아쉬워하는데 내가 이 친구하고 굳이 인간관계할 개연성이 없어서 그냥 전화번호도 없이

깨끗하게 헤어졌다. 나름 열차 안에서 나눈 대화? 아니 눈 인사가 어느새 서로에게 호감을 주었던 것인지

아쉬워하는 걸 뒤로 하고 그냥 바이 라고 말하고는 플랫폼을 빠져나왔다.

헤어질때는 그렇게 쿨하게 헤어져야 한다...

이거 뭔가..연인끼리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에휴..

36시간의 패닉 현상이 내게 끼친 영향이려니 생각하고 친구 녀석을 원망하며 오토릭샤를 잡으로 역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