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Life is..

숭례문

오션지 2008. 2. 16. 12:33

수백년을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버텨냈던 숭례문이 무너져 내리는 뉴스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어떤 이들은 민족의 자존심이 무너졌느니, 국가의 체면이 손상되었느니 하는 말로

그 안타까움을 표현했지만 실은 내게 숭례문이 무너진 사건은 그렇게 민족 운운한만한

사건은 아닌듯싶다. 민족의 자존심은 으례 있는 것이 아니다. 자존심있는 민족이야말로

민족의 자존심 운운할 자격이 있는 셈이다.

우리에게 민족적 자존심이라 할 것은 숭례문이 아니다. 언제부터 서울 시내 한 복판에 썰렁하기

그지없고 노숙자들이나 드나들던 그런 초라한 건물 한채를 민족의 자존심으로 여겨왔단 말인가.

무너질 자존심이 아니었으나 괜히 사고 후에 민족 자긍심을 부추기는 듯한 언론의 태도에도

적지않게 실망스러울 뿐이다.

 

숭례문 방화범을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가 가진 극단적 사고 방식의 실증을 보는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나이 70이면 이 시대의 어른이다. 내 나이 40인데 나 역시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일들을 많이 겪었지만 면사무소를 폭파시켜야겠다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다.

수백만원, 수천만원씩을 사기치고 달아난 자를 용서하며 살아온 나다.

그러나 그들을 응징하기 위해 흥신소를 찾아간 적도, 아는 깡패를 부른 적도 없다.

그저 용서하는 것이 내 실수요 내 잘못에 대한 당연한 의무겠거니 생각하며

밤잠 못이루는 수많은 날들을 기도로 지새웠다.

 

숭례문을 불태우면서 누구의 안목을 얻으려 했다는 말인가.

늙으막에 남은 것이라곤 집한채, 땅 몇천평이 전부인데 그걸 부당한 가격에 잃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악에 받치지 않을 이가 있을까...

그러나 나이는 몸만 늙어가는게 아니다. 인격도 함께 여물어 가는 것이다. 더불어 세상을 먼저 살아온

선진답게 후손들에게 본이 될 노릇들을 하고 살아야 마땅한 것이다.

아이들이 보고 무엇을 얻을 것인가. 큰 아이가 물었다. 저 할아버지가 왜 불을 질렀냐고...

논문 하나 씀직한 마땅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걸 어찌 설명하겠는가.

 

노대통령이 저 할아버지 탄원서를 읽어주지 않아서라고 할까...

권력의 무소불위의 힘이 한 늙은이의 땅을 손쉽게 빼앗았다고 할까...

늙은 노인네가 미쳐서 그런 것이라고 해야 한단 말인가...

 

상대적이요 불분명한 이유를 들어 설명하기에는 숭례문 방화 사건은 판단이 어려운 사건이다.

정말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 것인가.

며칠전 미국에서 총기 사건이 또 터졌다. 7명이나 죽고 수십명이 다친 사건이다.

말하나마나 이것은 모방 범죄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큰 일'을

저질러 버리는 것이다. 그 이후의 일은 상관없게 된다. 아이들이 이런 '막무가내' 근성을

배우게될까봐 큰 걱정이다.

 

수백억을 들여 숭례문을 복원한단다. 국민 혈세로 멀쩡하던 국보 1호를 다시 짓는다.

복원된 것을 국보 1호라 할 수 없으니 교과서조차도 바뀌어야 한다. 각 박물관이나 참고자료에서

숭례문을 국보 1호라 한 내용을 교정하여야 한다. 그 모든 비용이 산출하기 어려운 큰 숫자가 됨을

생각하면 더욱 답답한 일이다.

 

국민 자존심이 무너진 것이 문제가 아니다. 당장 학교 교육에서 숭례문 사건을 숨기지 못하게 되었다.

교육 현장에서 숭례문이 불탄 것에 대해 한 개인의 원한 때문이라고 어떻게 가르친단 말인가.

그렇다고 일어난 사건을 없었던 것으로 하기도 어렵다. 이제 어쩔 수 없이 숭례문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야 한다. 서울 한복판...KBS뉴스의 배경 화면으로 나오던 숭례문이 그 가치가 더욱 추락해서

앞으로 기억 속에서 사라져갈까 걱정이다.

 

남대문이라 하는 말이 무슨 시장판 싸릿문 느낌이라든가, 남자들 바지 앞섶에 있는 가리개쯤으로 빗대어

일컬어지는게 싫어서 숭례문으로 바뀐지 오래다. 그러나 이젠 그런 이름마저도 많이 퇘색할 노릇이다.

방화범 노인이 한 말이다. "숭례문이야 복원하면 되고..."

참 한심한 어른이다. 자신이 홧김에 저지른 일 때문에 이 나라 교과서와 자료들이 모조리 개편되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무너진 것은 자존심 뿐만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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