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차라리 말입니다.
어디 가서 공사판 인부를 하지, 왜 사기를 치고 다니는지..
좀 전의 일입니다.
일하다 말고 동네가 시끌 시끌하길래 뭔가 하고 들어보니
방송이 한창입니다.
"동네 주민 여러분,
우리 농산물이 요즘 수입산들 때문에 너무 안팔리죠?
그래서 우리 농민들이 여러분께 잡숴보시라고
공짜 우리 쌀보리를 나눠드립니다.
빨리 빨리 오세요~~
저기 아저씨,
저기 아주머니,
아, 할머니도 오셨네!
할아버지 어디 가세요?
빨리 오세요.
딱, 두시 반까지만 드립니다~
우리도 빨리 드리고 가야합니다.
우리 농산물,
농민,
공짜..
이 세가지가 묘하게 조합을 이뤄서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도 갑자기 마음이 살짝 움직이더군요.
어디 농협같은데서 온건가?
그래서 가만히 더 듣고 있는데...
우리 마누라가 후다닥 뛰어들어오더니,
"여보, 공짜로 쌀 준데요!
까만 비닐봉지가 어딨더라?"
그러면서 살짝 맛이간 표정을 하고는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된장!
우리 마누라가 평소에도 뭐에 귀가 얇은 사람인지라,
딱 저러고 날뛰는 것을 보면 대충 감이 잡힙니다.
마누라가 뛰쳐나간다는 것은 곧, 판단력도 뇌를 뛰쳐나간다는 것과
거의 일치라는 경우가 워낙에 많았던거지요. ㅎ
그래서 얼른 인터넷에서 검색을 했습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공짜는 다 사기야..라는 저의 지론이 발동을 했습니다.
검색 결과..
공짜 쌀 준다는 인간들은 결국 홍삼을 팔기 위해서 호객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쌀도 아닌 싸구려 중국산 쌀을 가져다 주고는
주로 노인층을 중심으로 싸구려 홍삼-즉 가짜 홍삼을 파는거죠.
마누라를 잡으로 뛰어나갔습니다.
저보다 훨씬 빨리 뛰쳐나간 마누라는 이미 어디론가 종적을 감췄습니다.
그래서 제가 더 빨리 뛰어서 골목 모퉁이를 돌아가보니
왠 텐트 하나가 거나하게 차려져있고 이미 거기에는 마을 사람 십수명이 웅성 웅성
모여있었습니다. 거기에 마누라의 모습이 끼어있는 모습이란...ㅠ
체면도 있고 해서 조용히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서서 아직도 호객 방송을 하고 있는 사기꾼들의 차량 번호를
얼른 아이폰으로 찍으려고 하는데,
운전하면서 방송을 하던 참 막 굴러먹은듯이 생긴 젊은 친구가
저에게 대뜸, 뭐야? 뭔데 남의 차 사진을 찍어?
라고 짧은 말을 하길래, 저는 갑자기 공손하게
"이런거 여기서 하지 마세요. 다 아니까, 빨리 가세요!"
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갑자기 기가 팍 살아버린 그 젊은이는, 씨발, 뭔데 사진을 찍어?
라고 레벨업을 하더군요.
저도 더 이상을 질 수 없겠다 싶어서 평소에 안쓰는 말투로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야, 너 뭐라그랬냐?"
형 동생 하는 사이에게도 야, 란 말은 거의 안써 봤는데..
인격이 바닥을 치는 것을 느끼고서야 그 젊은이가 먹고 살기 위해
애쓰는 것이라는 약간의 자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시골 사람들이라고 무시하고 이런 호객행위 하지 말고 빨리 가라고..
그럴려고 했는데...그 젊은이가 차를 한 바퀴 휙 돌리더니 천막 있는데로 와서는
무슨 신호를 했고, 그 안에서 나온 약간은 점잖은 사람이
'사장님, 갈거니까, 사장님이 이해하세요..'라고 급 쿨다운 모드로
전환하길래, 제가 또 레벨을 맞추기 위해서 '아, 뭐..그래도 반말은..'라고
멋쩍게 말했습니다.
결국 천막은 칠 때보다는 훨씬 빠르게 걷어부쳐졌고
사람들은 언제 탔는지도 모르게 봉고차에 다 올라타고는 훌쩍 어디론가
떠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글을 쓰기 전 약 10분 전쯤의 일입니다...
좀 전까지도 입맛을 쩍쩍 다시면서,
"공짜로 쌀 준다는 사람들 어딨어?"하며
마누라에게 물어보는 동네 아주머니가 있었을 정도로
사람들은 공짜라는 것에 대해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소에 저는 아이들에게도 철저히 가르칩니다.
인터넷이든 어디든 공짜는 사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이들도 이젠 어느 정도는 다 압니다.
마눌님이 벌써 속아서 산 화장품이나 전기장판, 건강식품이 한 두개가 아닙니다.
그거 갚으면서 밥먹을때마다 모래알 씹듯 분을 씹어삼켜야 했지요.
소보원에 신고해도 해결이 안됩니다.
그래서 저는 동네에서 무슨 무료 경로잔치 한다 하면 무조건 면사무소에 신고합니다.
이번에도 면사무소에 신고했더니 새파랗게 젊은 애가 받는데
뭔소린지 감도 못잡는게 틀림없습니다.
파출소에 전화하니 순찰중이라고 핸드폰으로 돌아가 어디 산골짜기에
있는지 연결도 안됩니다.
그냥 무시하고 나만 안당하면 되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지만
노인들은 멋도 모르고 천막 안으로 끌려가 없던 병이 생기고
모르던 혈압이 나오고, 다 나은줄 알았던 당뇨가 나오는겁니다.
그리고 홍삼이 사람한테 좋다는 것은 텔레비젼에 나오는 '박사님'들이
하도 말해줘서 그냥 결제하고 나옵니다. 할부 끊고 나오는거지요.
동네 분위기 어수선해지고 사람들이 속고 나면 괜히 서로 의심스럽고
같이 가자고 불렀던 사람한테 탓을 하게 되고 싸움이 나지요.
동네는 쑥밭이 되는 동안 사기친 인생들은 어디선가 다른 아이템 연구하고 있을거구요.
세상 참 살기 어렵습니다.
알아야 할것도 많고 멀쩡히 알고도 당하는 경우도 있구요.
그래도 사기는 아닙니다. 어르신들 상대로 사기쳐서 가정 파탄이 일어나도록 유도하는
저 인생들이 사람의 탈을 쓴 늑대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래놓고 자기 자식들 학비 대가며 정직하게 살라고 할 것 아닙니까?
없이 살아도 남한테 피해주지 않고 살아오신 우리 부모님을 제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저 욕좀 먹었습니다. 덕분에 그간 무림 생활을 못해서 올리지 못했던 경치도 조금은 올렸고
적어도 1렙을 올린것 같습니다. 좋게 생각해야죠. 뭐.
속지 말고 삽시다.
속은 후에 후회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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