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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주는 관계 늘 좋은 것은 아니다-강호동 김종민 키워주기

오션지 2011. 1. 24. 14:20

강호동.

예능계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입지전적 인물 아닌가.

1박2일에 강호동이 없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그의 비중은 그 자신의 몸무게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진다. 맴버들이 그를 얼마나 의지하느냐 하는 것은 굳이 안따져봐도 알만한 일이다.

그런 그에게 김종민은 1박2일에서 어떤 존재감을 주고 있을까.


옛날 이수근이 영입되었을때 제대로 치고 나오지 못해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느끼게 했던 적을 기억해볼 수 있다. 다른 맴버들보다 늘 한 박자 늦게 나오거나 치고 나오는 것마다 별로 반응을 못얻자 이수근은 매우 당황해했고 내심 괴로워했다고 나중에야 고백한 일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 이수근과 비슷한 입장이 바로 요즘의 1박2일에 와서는 김종민의 입장이 아닐까.

제대 후 며칠 동안 방송에 다시 모습을 보인 그의 입지는 기대반,우려반이었다. 그래도 그나마 복귀 방송은 절반의 성공이나 마찬가지였다. 토크쇼에 나와서 그가 터뜨리는 나름의 웃음 코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하더니 좀 진지해진 종민의 모습은 예전의 어눌하고 모자라는 모습과 대비가 되어 한때 시청자의 한 사람인 나에게 호기심을 느끼게 해주었으니까.

그러나 책을 너무 많이 읽었다 싶은게 솔직히 요즘 종민의 모습에서 느끼는 내 마음이다.

개그맨으로, 또는 가수로 양쪽을 다 완벽하게 해내지도 못하면서 종민은 자기 자리를 여전히 제대로 못찾고 헤매고 있다. 사람이 자기 자리를 제대로 찾는다는 것은 환갑이 지나서도 어려운 사람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그런 세상인데 젊디 젊은 청춘인데다 갓 군대에서 나와 사회 변화를 적응하지 못하는 종민에게 빠른 템포와 극악의 변화를 요구하는 트크쇼나 예능에서 요구하는 수준은 사뭇 높은 것도 사실이다.

요즘은 아침에 눈만 떠도 새로운 지식들이 쏟아져 나오고 코드가 바뀌고 있다. 새로운 신조어만 해도 수없이 등장한다. 지금의 이수근이나 이승기가 그냥 만들어진게 아니다. 빠른 변화는 그들에게 예능에서 제대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가를 잘 학습시키는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그 변화 학습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면 결국 예능에서는 도태되는 법이다.


이승기는 지난 1박2일 방송분에서 우리즐이 하나로 시청자에게 웃음을 줄 줄 안다.

그에게 맡겨진 미션은 퍼즐 운반이었다. 어떻게 퍼즐 하나로 방송 분량, 즉 웃음 코드를 생산해 내느냐하는 숙제는 살벌한 예능계에서 그가 살아남아 계속 연명해야 할 재료인 셈이다. 이승기는 '우리즐이'라는 간단한 단어 하나로 우선 시청자에게 웃음을 준다. 젊은 사람답게 빠른 템포로 머리를 회전시킨다. 그리고는 천부적인 말장난처럼 '우리즐이'라고 하는 친숙하면서도 재미있는 말장난으로 살짝 웃겨주는 센스를 보여준다.

그런가하면 호동에 의해 산산이 흩어진 퍼즐 조각을 모아 목적지로 향하는 차 안에서 일일이 맞추어 나가는 끈기 역시도 시청자에게는 그의 성실성을 보여주는 재료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웃음의 코드를 주게 된 요소는 바로 잃어버린 퍼즐 조각 대신에 그림으로 빈 공간을 채워넣는 장면이다. 단순히 그림만이라면 이것 역시 50%밖에는 웃기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났겠지만 승기는 그걸 가지고도 창의적인 웃음코드를 만들어낸다.

걸리버도 없고, 걸리버를 쓰다듬던 여자도 없고..

이 대사 하나가 시청자들에게 심심한 느낌을 확 없애주는 청량제같은 웃음코드가 되었던 것이다.


자, 그럼 다른 맴버는?

지원의 웃음 코드는 다름 아닌 꾀돌이 이미지다.

그는 돈 한푼 안들이고 승기와의 동맹을 미끼로 점심을 얻어먹는다. 꾀를 써서 점심을 얻어먹는 것 자체도 재미있는 설정이지만 뭔가에 쫓기듯 마구 음식을 털어넣는 그 모습이 영락없는 꾀돌이 이미지라 그 자체로 다시 웃음을 만들어낸다. 어찌보면 지원의 그런 모습은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은 웃음 재료라 그런지 신선함마저 있다.


수근의 경우에는 지원과는 좀 다르다.

신발이라는 좋은 아이템을 얻었기에 만들어진 상황이긴 했지만 테이프로 감는다든지, 네비와의 대화 장면이라든지 하는 것은 그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다양한 웃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어느 정도 심어두었다는 면에서 발전적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수근의 바쁜 스케쥴은 이번 1박2일에서 암암리에 드러났다. 현장에서 바로 바로 만들어내는 재료라 신선함은 있지만 잘 익은 음식같은 깊은 맛은 없다.

시청자들은 새로 지은 밥도 좋아하지만 잘 익은 김치같은 곰삭은 웃음도 아주 좋아하기 때문이다.

수근에게 있어서는 요즘 그런 곰삭은 웃음이 부족하다. 그냥 그 때 그 때 만들어진 본능적 개그에 너무 의존하는 것같아 그의 바쁜 스케쥴이 조금 원망스러울 뿐이다.


호동의 경우는 적어도 이번 1박2일 촬영분에 있어서만큼은 참담하다고 하겠다.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종민을 밀어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우리 시청자들에 대한 호동의 다급하고 애절한 마음이 담긴 행동이었겠지만 회차가 거듭할 수록 종민은 차라리 가수라는 본업으로 복귀하는게 낫지 않나 싶을 만큼 호동이 밀어주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함마저 묻어있다.

과연 호동은 수근의 신발에 집착하며 구멍까지 내가며 라면 국물을 묻혔어야 했을까?

거기다가 뜬금없이 계란을 종민에게 맡기는 어설픈 작업?이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예상하지 못했을까?


종민은 여러 차원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해야할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군에서 제대한 후 좀 더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고 복귀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자주 든다. 그러나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려서 지금에 와서야 잠시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시청자들은 참을 준비가 되어 있었고 지금도 종민이 툭 터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호동은 채찍질을 하듯 종민을 몰아붙인다. 종민의 준비되지 않은 본능을 일깨우는 것은 그의 채찍이 아니다. 기다려주는 시청자의 사랑과 자신의 가능성에 대한 본인 스스로의 자각이다.

이번에 호동이 종민을 밀어준 것은 시청자에게 오히려 실망감만 더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억지로 키운 화초는 오래가지 못한다. 햇빛을 기다리고 수분을 머금으며 생태계의 자연스런 타이머가 정시에 도달해야 꽃이 피는 것을 왜 모를까.


1박2일은 공동체적 느낌이 강하면서도 약육강식의 처절한 예능계 본성이 그대로 녹아있는 사각 링과 같은 느낌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맴버간의 치고 빠지는 대본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냉혹한 시청자들의 판단과 평가에 따라 존폐를 논하게도 만들기 때문이다. 

호동이 종민을 키워주기 하는 이유는 십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기다려주고 있는 것을 호동은 너무 쉽게 간과해서는 안된다. 호동은 시청자들의 기다림을 통해 만개할 종민을 함께 기다려주어야 한다. 거기에 나피디나 다른 누군가가 대신할 자리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