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전의 참맛! SC-8000을 다시본다-4

오션지 2010. 10. 2. 12:34

저녁때 마누라한테서 전화가 왔다.

크래둘에 앉아있는 팔천이가 나발을 불길래 빼낼래다가 왠지 째려보는거 같아서

눈치보다가 기냥 통화버튼을 눌렀다.

근데 마누라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들어가는데 뭐 사갈거 없어요?...'

원래는 먹고 싶은게 있어서 안그래도 전화오면 사갖고 들어오랠라구 그랬는데

팔천이의 신통방통한 스피커폰 소리를 듣고서 갑자기 배가 불러왔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게 아니라는 성경의 말씀은 이런걸 두고 한 말인지도...

컴터 하다가 전화오면 기냥 쿡 쥐어박아도 통화가 되는 팔천이는 이럴 때

한 몫을 한다.



마누라하고 마트에 간다.

자긴 꼼꼼해서 시장 볼꺼 일일이 삼송이한테 메모한다는데 실은 병적인

건망증때문이라는건 결혼 전부터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남자가 우기면 한대 치고 내빼면 속이라도 시원하지 여자라서

쥐어박을 수도 없고 밥이라도 얻어먹을라믄 유구무언이 상책이다.

어쨌든,

마누라가 시장 볼일이 많은 날이면 메모한다고 삼송이 면상을 아프게 꾹꾹 눌러대느라 고생할 때

나는 조용히 큰 아들 쓰다 버린 연필 집어서(팔천이가 차고 있는 꼬작댕이 없을 때)

팔천이 얼굴에 아이새도우 그리듯 쓱쓱 그려도 된다.

아, 이건 팔천이 옆구리 쿡 찔러서 헉 하고 나오는 그 메모장 아니고

대기 화면 설정에서 기능표시 부분에 있는 그 메모말이다.

글고 마누라 핸펀 키고 메뉴 찾아들어갈 때 난 버튼 한 번, 엄지 권법 한번이면

목록을 볼 수 있다.

이 메모장이 얼마나 긴지는 직접 해보면 안다.


게다가 팔천이의 뛰어난 기능중 하나, 마누라가 오늘 아침에도 무쟈게 부러워한

기능은 바로,

핸드스토리이다.

플그램 자체가 뛰어난건 아니지만 이거 만드는 사람들이 그래도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일테고 나름대로 장점이 더 많겠지..그렇게 위안받으면

몇만원 내고 산게 아깝지는 않다.

클립 몇가지 해서 아침에 팔천이 깨워서 내려받기 한 후 기냥 들고

마누라 따라 나서면 하루가 신선하게 시작된다.

팔천이로 엠피쓰리 돌리면서 음악을 듣는다.

덕분에 난 음악 틀어야 하니 출근할 때 '그대가 운전하쇼' 해도

군말 못하는 마누라...팔천이는 나의 구세주다.

음악 틀어놓고 클리핑한 신문기사 쭈욱 읽다보면 어느새 도착해 있다.

'장마철 화장실 냄새 제거에는 에탄올이 최고라네...알고 있었겠지만..'

'장마철 차에 냄새가 많이 날 때는 바닥에 신문지 좀 깔아놓으면 그만이라네..'

'아, 냉장고 냄새 없앨때도 에탄올 사다 뿌리고 닦으면 좋다니..에탄올이

쓰임새가 많네...'

덥다고 에어콘 트는 마누라한테

'어허...달리는 중에 에어콘 틀면 무리가 간다네...신호대기할 때 키라는구만..'

'오토 에어콘이 수동보다 습기 제거에는 그만이라는군...흠...'

마누라가 첨엔 그러려니, 다음엔 잘난척 한다는 표정, 그 다음엔 고마해라..

결국 마지막 나의 인포메이션 공습에 폭발을 하고 말았다.

'당신이 운전해욧!'

혹떼려다 혹붙였다고..운전대 잡고보니 후회막급이라...때는 바야흐로..

마누라가 내 팔천이를 움켜쥐었다. 팔천아! 미안하다. 쫌만 고생해라..

평소엔 80키로로 갔던 길, 널 위해서 100키로를 넘겨볼께...

하지만, 나의 팔천이는 마누라가 고도리왕과 마작을 하느라 눌러대는,

나의 예술적 손놀림과는 전혀 감각적으루 필이 다른, 험한

손놀림에 면상이 까질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티격 태격하던 마누라와 나의 아이티 대전은 어느덧

서로를 인정하는 마음과 함께 화해의 모드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물론, 그냥 화해한 건 아니었다.

그 매개체는 서로에 대한 필요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