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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The invention of Lying 거짓말의 발명

오션지 2010. 8. 22. 19:11

어설픈 거짓말은 안통한다.

오직 진실만을 말하는 사회에서 유일하게 거짓말을 할 줄 알게 된 사나이.

모두 진실만을 말하는데 밝고 건전한 사회가 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하지만 주인공만은 그들의 진실한 말에 상처를 받는다.

영화의 설정은 진실만을 말하는 사람들의 말이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는데에 중요한 포인트를 두고 있다.

진실과 진리는 다르다는 점을 중요시한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거짓말을 많이 한다.

우리가 가장 거짓말을 많이 하는 대상은 누굴까?

다름아닌 가족이다. 가장 많이 만나는 대상이니까. 특히 부부간의 거짓말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부부간에 만약 이영화처럼 모든 경우에 다 진실만 말한다면 아마 한 커플도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 없을 것이다.

선의의 거짓말이란게 있는 까닭이 그것이다.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절대적 진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절대적 거짓말만 있는 것도 아닌 것이다.

 

영화속에서 설정되어 나오는 주인공은 세상의 이러한 기준에 정반대의 입장에 처하게 된다.

모두 진실만 말할때 그는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 거짓말의 시초는 바로 어머니이다. 요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어머니에게 그가 최초로 한 거짓말은

바로 죽은 후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죽어가는 어머니에게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죽음의 끝에는 새로운 멋진 삶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게 되고 이 거짓말은 어머니에게 미소를 지으며 죽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 후에 과연 그 세계가 진짜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가 하게 된 이 거짓말의 근원은

출처가 어디인지는 분명하지 않은채 요양원을 중심으로 사람들에게 퍼져나가고 급기야 세계적인 관심까지 끌게 된다.

 

사람들의 관심이 증폭되자 그는 이제 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평소의 그가 가진 썰렁한 성격대로 모든 상황을 종합하여 사람들의 의문을 잠재울 10가지의 항목을 만들게 된다.

마치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아와 사람들에게 전해준것처럼 그도 군중들 앞에서 그것들을 읽어주며

간단한? 열가지 원리만 따르면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모세와 차이점이 있다면 성경에 잘 기록되어 있진 않지만 적어도 모세 당시에는 사람들이 질문을 하지 않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사람들의 질문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역설적인 내용이다.

십계명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나 현대 기독교에나 하나의 기준이 되고 있다.

하지만 역시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현대인들보다 교육도 덜 받고 무지함의 정도가 큰 차이가 난다.

물론 현대인만큼 많은 지식이 필요하지 않아도 살아가는데에 지장이 없었을만큼 단순한 삶의 연속이었겠지만 인간의 죄의 벌, 혹은 상에 관한 기준으로 겨우 10가지의 계명은 부족하지 않을까?

이 영화에서는 그러한 당연한 질문에 대해 신랄하게 의문을 던지는 군중들이 있는가하면 그들 중에서 이 열가지 계명에 대한 애매모호한 질문과 또 주인공의 애매모호한 억지 대답을 통해 복잡한 현대인에게 십계명은 그저 단순한 선포에 불과하다는 신랄한 비판을 던진다.

 

 

결국 영화를 만든 작가나 감독 모두가 추구하는 대답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다.

과거로부터 흘러내려온 전통적인 윤리관,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양 종교의 근간을 이루는 그리스도교의 절대적 군주 노릇을 해왔던 십계명은 결국,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 저자의 의도가 다분히 숨어있다.

주인공은 무능력한 사람이었다. 재미없는 시나리오를 쓰던 사람이었고 해고 직전에 몰린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비난 받는 것, 그리고 매일같이 반복되는 가난과 자괴감 같은 것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거짓말하는 남다른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이유가 바로 돈이 필요해서 찾아간 은행에서 겪게 되는 부정 인출이라는 것이다.

물질 문명이 만들어내는 갖가지 거짓들에 대한 감독의 에피타이저같은, 하지만 주제감이 넘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인간에게 사랑이란 것, 삶의 진지함 같은 것은 언제나 그 자체로서 순수함을 유지하기란 어려운 모양이다. 아니, 순수함을 유지한다고 해도 인정받지 못한다. 그것이 인정받는 조건은 은행에서의 거짓말로 주인공이 얻게 되는 부와 명성이 함께 할때라는 점은 예리한 추격이 아닐 수 없다.

 

 

 

이 영화를 단순히 기독교에 대한 위험한 비판 정도로만 여긴다면 오산이다. 기도교 하나만 두고 비판정도로 만족할 영화가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가지고 있는 모순, 즉 진실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일깨워주는 일면이 있을 뿐 아니라 거짓이 진실을 잉태하고 더 큰 진실로 포장까지 될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오늘날 사회를 짓밟고 있는 문제들, 인구, 환경, 전쟁, 핵무기,우주 개발, 인종 갈등, 살인, 낙태, 강간, 마약, 포르노 등등..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기독교가 어떤 해답을 가지고 있을까. 차라리 해답이라기 보다는 그 현상에 대한 평가만 있는 것이 아닐까?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가진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가지지 못하는 진리라면 그것이 과연 진리일까 라는 질문은 어쩔 수 없이 태어난다.

작가의 고민은 결국 진부한 사랑타령으로 끝 아닌 끝을 맺는다. 아마도 10부작 다큐멘터리로 나왔다면 작가의 의도가 보다 분명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다큐멘터리는 없다. 이것은 조소가 섞여있는 하나의 비판서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사랑하는 여인에게 자신의 거짓말을 고백하는 장면은 다소 어색하다.

겨우 이런 거짓말을 발명한 사람의 마지막 선택이 남녀간의 진실한 사랑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