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Life

선거와 교회

오션지 2010. 5. 23. 20:26

교회가 일년중에 몇 번은 사람들로 꽉꽉 차는 경우가 있다.

교회에서 결혼식 하는 날,

교회에서 부흥회 하는 날,

교회에서 장로,권사,안수집사 투표하는 날,

그리고 선거를 앞두고 몇 주간이다.

 

평소에 교회에 잘 오지 않는 사람들이 투표가 있으면 갑자기 눈에 띄게 늘어난다.

아버지가 장로가 되고 어머니가 권사가 되고, 남편이 안수집사가 되는 일에는 한 개의 표라도 더 얻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공부하느라 바빠서 못나온다던 대학생 딸과 아들도 그 날만큼은 꼭 나와서

거룩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하는 법이다.

게다가 저 멀리 사는 딸, 사위들도 그 날 만큼은 자기네 교회 행사를 만사 제쳐놓고

역시 거룩한 한 표를 던지기 위해 교회에 와야 하는 것이다.

이날 만큼은 생판 모르는 새 교인이 아닌 이상, 평소에 교회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아들이나 딸이나 사위나 며느리가 그 교회 투표 자격을 가지게 되는 법이다.

누가 뭐라하면 하나님께 은혜가 안되니 그럴 처지도 못된다.

복되고 기쁜 날에 목사가 어떤 이유를 들어 투표하지 말라고 할 수 있다면 그 목사는 강심장 출연해도 좋다.

 

그리고 선거 때가 되면 역시 평소에 얼굴 한 번 보일 일이 없는 시장에, 군수에, 면장에, 기초단체에

속한 각 의원들이 줄줄이 나타나 성스러운 예배 중에 광고시간을 특별히 할애하여

자신을 소개하고 갑자기 장로가 되거나 집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면 당선된 사람은 바빠서 다시 못오고 떨어진 사람은 면목이 없어서 다시 못 오는 것이

교회가 되고 말았다.

 

교회 주보 뒷면에는 어떤 집사가 가게 오픈을 했다, 사업을 시작했다고 알리는 글이 쉽게 눈에 띈다.

교회의 주보는 한 주간의 교회 동정을 살펴보게 하는 것이니 이런 것을 적은 일을 두고 비난할 것은 못된다.

그러나 왜 감사헌금 명단에 사람 이름 다음에 가게 이름이 들어가는지는 도무지 신비스러운 퀴즈다.

헌금도 본인 이름이 아니고 가게 이름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십일조가 아닌 이상 감사헌금은 가게 이름으로

해도 되지 않겠냐고 반문할지 모르나 그 대답 역시 찾기 어려운 일이다.

 

교회 요람을 보면 더욱 가관이다.

교회 요람은 한 마디로 교인들 명함모음집이나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지역사회에서 발간하는 가로수같은 지역 사업체 홍보 책자보는 것은 뒤로하고

교인들 요람에 있는 무슨 집사가 하는 무슨 가게, 무슨 권사가 하는 무슨 사업만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거기에 주문하고 거래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교회는 자기들끼리 다 해먹는 곳이라고 말한다.

 

교회가 뭔가.

문자적으로는 믿는 자들의 거룩한 모임, 혹은 구별된 자들의 모임이라는 뜻이다.

참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는 문장이다.

거룩히 구별된 자들의 모임이니만큼 세상 사람들의 사업이나 가게나 관심과는 별도로

오로지 교인들만 서로 의지하고 교류하여야한다고 생각해도 큰 무리가 없을 일이다.

그럼 전도는 뭔가.

바로 이러한 거룩히 구별된 자들의 모임에 새로운 구성원을 추가시키는 작업일 뿐이다.

폐쇄적인 한 그룹에 전혀 폐쇄적이지 않은 모양을 하고 구성원을 추가하는 것이 전도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전도되면 그도 역시 이 폐쇄적 공간의 일원이 된다.

 

교회라는데가 이리 저리 쓸모있게 활용되는 것은 나쁘지 않으나

요즘은 교회가 사람들의 욕심에 완전히 노출이 되어 있어서 누구나 쉽게 교회에 찾아가

그 모임의 구성원이 되기 쉽기에 교회는 요즘 같이 필요가 있는 곳에 크게 가치가 있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선거와 교회는 이런 면에서 많은 연관이 있다.

교회처럼 쉽게 어필할 수 있는 곳도 드물기 때문이다.

목사의 한 마디가 큰 반향을 일으키니 교묘히 선거법을 위반하지 않을만큼만

언급하는 지혜를 발휘하면 되는 곳이 바로 교회다.

그러나 교회의 순수성을 완벽히 지키기란 어려운 일이다.

특히 목사가 자기 교회를 선거에 중립적으로 지켜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교회 내에 있는 수많은 정당과 의견들을 종합해낼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성경에 선거와 관련되는 한 구절 찾아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니 더욱 그렇다.

이제 어떻게 하는 것이 옳겠는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교회내 선거법 위반 사례를 일일이 찾아낼 수도 없는 일이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픈된 것같지만 가장 은밀한 곳이 교회라고 하지 않던가.

이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오로지 목사의 지혜뿐이다.

부화뇌동할 일이 아니고 중심을 지키고 바른 길을 가도록 민생을 살피고

중보의 기도를 하는 것이 목사의 책무가 아닐까.

 

선거판이 벌어지니 웃지도 못할 일이 생긴다고 한다.

사람들이 잘 모르면 무조건 1번을 찍는 습관이 있는 나라..대한민국..

이때문에 여,야,무 할 것 없이 무조건 1번을 따내려고 기를 쓴다.

그것때문에 절에 가는 사람도 있고 무당을 찾기도 한다.

그에 못지 않게 새벽기도에 금요철야에 빠질것 없이 무조건 참석하여

자신 뿐 아니라 목사와 성도들에게 기도해달라고 부탁하는 어리석은 짓거리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후보자들의 가족들이고 당사자들이다.

요행에 하나님의 운을 바라는 것만큼 바보스럽고 한심한 작태가 또있을까?

나보다 나은 사람이 뽑히게 해 달라고, 나보다 더 청렴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정직하고 열정적인 후보가 뽑히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는

하고 있는지나 모르겠다. 집사님,장로님 후보들께서 말이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겸손히 내 눈의 티끌부터 뽑아내려는 자성의 모습이 없이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요 능력이라고 믿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국회로,의회로,관공서로 간다.

 

이 사람들이 목에 힘들어가서 서민을 낮춰보고 정치를 자시 실현으로 보는 까닭에

이 나라의 미래가 불투명해지는 것이다.

말로는 국민을 섬긴다고 하고 자신은 봉사하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누가 국민에게 섬기고 봉사한다고 자랑하라고 했던가.

참으로 섬기는 자는 자신을 완전히 버릴때에야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자기 스스로를 생명바쳐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도 섬긴다고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선거라는 제도는 그러고보면 참 악랄한 제도가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말하듯이 신성한 국민의 권리를 표시하는 방법이 선거다.

하지만 국민의 신성한 뜻을 가장 더럽히고 악하게 이용하는 것이 또한 선거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선거를 활용하는 피선거권자들이다.

지켜낼 수 없는 공약을 남발하고 상대방을 비판이 아닌 비난으로 깎아내리고

겸손와 교양을 가장한 가장 극도의 교만과 욕심을 숨긴 발톱을 내밀듯이

몰래 내밀고들 있는게 후보자들 아닌가.

 

그런 볼썽사나운 선거판에 교회가 한몫을 한다면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신을 차리고 조심해야할 교회가 많다.

교인 수만명이 있는 교회는 더욱 그렇다.

가뜩이나 장로 대통령이 집권을 하니 교회는 이런 면에 있어서 외부의 눈을 조심해야하고

스스로 겸허히 기도하며 조심해야 옳다.

생각에는 어떤 후보자도 교회를 찾을 수 없도록 하고

교회 내의 후보자 역시도 선거기단동안은 교회 활동을 예배 외에는 모두 자제하고

교회 내에서도 선서와 관련된 어떤 모임도 없어야 그나마 공정한 판단 기준이

확립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