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눔-I think..

코걸이 귀걸이

오션지 2008. 3. 3. 01:30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미국에 있는 어느 교회 목회자의 설교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워낙 믿음도 부족하고 타락할데로 타락한 인생이라 내 귀에 말씀이란 곧 우이독경..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리는데 전혀 죄스런 마음도 없는게 요즘 내 삶이다.
하나님 바라보는 눈길 낮아진지 이미 오래다.
죄인이 달리 죄인인가. 스스로 죄의 자리에서 털고 벌떡 일어나 앉지 못하니
앉은뱅이가 따로 없다.
그러나 내 귀가 아무리 죄로 페인트칠을 한 무지몽매한 인생의 귀라도 나름 어려운 설교 말씀을
어느 정도는 듣고 아멘할 줄 아는 거짓된 입이라도 가진 바가 있다.
하지만 오늘의 설교는...참으로 퐝당해서 말이 안나온다.
극동방송이라면 국내 교인들에게 알려질대로 알려진 방송이고 나처럼 반 교인 나부랭이조차도
그나마 채널 고정이랄까..그렇게 듣는 이가 꽤 많은 줄 안다. 그런데 도무지 오늘 나와 설교한
목회자의 설교는 들을 귀 있는 자의 귀라 한들 참 듣기 민망했다.

일례로 들면 간단할 줄 안다.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는 말씀에 대한 강론을,
"그러니 누구든지, 사업을 하던, 식당을 하던, 공부를 하던...하나님 앞에 나오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지혜를 주셔서 복받을 길을 열어주신다" 는 식의 설교였다.

나는 주석가도 아니요 설교가도 아니다.
그저 주어진 말씀이 내게 주시는 그 날의 양식에 감읍하여 죄인됨을 다시 고백하며
매일을 그럭저럭 견디어 내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저 본문을 가지고 저렇게 설교하는데에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복받는 것이 성도의 본분이란다.
사업 잘되게 해달라고 빌라고 한다. 아파트 평수 늘려달라고 빌란다. 미국 땅 타향살이에 고단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교민들을 상대로 하다보니 성공 지향주의적인 그들의 취향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겠지마는, 적어도 목회자라면 어찌 저런 설교는 할 수 있는가...

눈높이에 맞추겠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저 지혜가 돈 많이 벌고 성공하기 위해 구하는 지혜인가.
그럼 무지한 자는 꾸지람을 하신다는 말인가. 내가 알기에 앞서 말했듯 주석가는 아니지마는
저 지혜란, 구원받는 지혜가 아닌가. 그러므로 구원받기에 합당한 지혜를 주시되, 그 지은 죄를 꾸짖지 아니
하시고 구원에 합당한 넘치는 은혜를 주신다는 말씀으로 해석하여야 옳지 않겠는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는 말씀은 복받기 위해 기도하는 말씀과 정면으로 배치되는데 이 본문에 와서도 사업 번창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래도 주의 종의 말씀이니 채널 고정의 존심도 있고 해서 끝까지 설교를 들었다.
그러고보니 지난 주에 들으며 참...뭐했던 설교도 바로 이 목회자의 설교였던 것이다.
열정의 설교 말이다.

목회자의 설교 한 마디에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을 안다면 고민하지 않는 목회자는 거짓 삯군에 다름 없다.
진리를 진리로서, 말씀으로 풀지 아니하고 자기 경험과 인간적 판단력에 더욱 의존하여 교인들 삶에
초점을 빗대어 설교를 한다면 모든 설교는 생활 설교가 되고 말것이다.
주의 말씀의 권위를 앞세우기 전에 말씀이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권위가 있도록 하는 것이
목회자의 책임이다. 말씀의 권위를 무너뜨리며 자기 생각을 더 많이 말하는 목회자....
교인들은 예리한 판단력과 사냥개같은 영적 후각을 가졌음을 목회자가 모르면 동상이몽의
목회가 되고 마는 것이다.

수많은 청중이 듣는 방송에서 뭔가 편치 않은 설교를 듣고 나니 소화 불량에 걸린듯 하다.
집에 오니 아내가 반갑게 맞아준다. 언제나 밝은 얼굴로 맞아주는 아내에게선 향기가 난다.
그리고는 밥상 머리에 앉아 오늘 자기 교회 목회자의 설교를 일목요연하게 요약 설명한다.
40분 넘는 설교를 단 1분만에 요약하는 대단한 기술이 놀라운 것도 그렇지만 실은 그 짧은
요약이 아내가 받은 은혜이기에 시원한 위청수가 되어 가슴을 적신다.

설교는 교감이 있어야 한다. 다 아는 예화, 다 아는 시사 상식, 그리고 왠만한 사람이면
해보았을 삶의 경험들 가지고 설교해서는 안된다. 설교자는 말씀을 가지고 설교해야 한다.
설교자는 마치 시골 장터에서 산오징어를 파는 장삿꾼에 버금가는 존재다.
펄떡거리며 얼음위에서 날뛰는 산 오징어는 상인에게는 자존심이요 자신감이자 미래다.
살아 움직이는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가 많아야 한국 교회가 생동력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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