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얘기 좀 하자.
(상당히 자의적일 수 있으니 딴지 걸지 마시길 바랍니다.)
솔직히 요즘 신학생들은 훨씬 덜하긴 한데 80년대 중심으로 전후해서 신학교 들어간 신학생들 학력이나 지성이 많이 모자랐다. 가다가 안 되면 대충 선택해서 들어간 게 신학교였고 가르치는 교수님들은 연일 한숨 쉬면서 '얘들을 내가 어떻게 가르치나' 싶었던 시절이었다. 기초 학력 부족이 많았고 그저 열성만 많아서 기도파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런 신학생들이 겨우겨우 어떻게 공부를 해서 졸업하고 대학원 가고 목사 안수까지 받았는데 그래도 역시 지성은 많이 부족한 상태에서 열정적인 영성만 열심히 채워서 지성의 부족을 겨우 극복한 거 아닌가. 목회가 꼭 지성으로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기초학력, 즉 지적 능력은 목회의 향방을 가르는 중요한 열쇠다.
일반 서적을 읽기보다는 성경만 열심히 읽어 성경고사 패스해서 졸업할 생각만 했으니 그 지성의 정체는 사실 명약관화한 것이다. 소설을 제대로 읽었나 사회학 서적을 읽었나. 영어 원서도 제대로 못 읽고 졸업한 게 태반이 넘고 교회 사역에 치여 공부보다는 목회 훈련을 더 많이 받은 것도 사실이다. 또 그래야 어디든 자리잡아 나가 목회를 할 수 있었고.
신학교 다니면서 열심히 사모았던 원서, 한 권이나 제대로 읽고 졸업한 사람 과연 몇 명일까? 그 많은 신학서적들도 장식장만 채우고 나중엔 그냥 종이무게로 내다 버리는 판이다. 목회는 사실 공부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 전도사 시절 겪으면서 쌓은 인간관계 경험이 큰 역할을 했고 그때 만든 인맥이 또 한 역할을 했다. 그러니 배운 거라곤 목회수법이었다.
여차하면 책을 읽거나 연구하는 게 아니라 산에 올라가 나무뿌리 뽑을 생각을 하거나 금식해서 어쩌다 해결된 걸 사방 회자시키며 롤모델로 삼아 희망고문을 하던 못된 습관들만 배웠던 것도 사실 아닌가. 부흥회니 사경회니 성경으로 조질 생각만 했지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상식적으로 결정하는 일은 참 드물었던 것이다.
대한민국 교회들의 반지성 경향은 바로 이런 지적 능력 부족이 원인이라고 봐야 한다. 지금도 여러 설교들을 들어보면 수천년 전의 구약 이야기를 오늘날에 곧바로 끌어와 괴상한 대입을 하는 건 기본이다. 예수는 여전히 공상만화 속의 슈퍼맨이나 투명인간 같은 초능력자로 묘사되고 만다. 책을 읽지 않으니 수십 년 전에 읽고 배웠던 학자들의 사상을 답습하면서 동떨어진 시대의식을 갖고 설교하고 있다.
믿슙니까? 아멘하세요! 소리치면 성도들은 습관적으로 아멘!이라고 화답한다. 이런 쇼맨십을 예배랍시고 드리고 앉아 있고 적당한 농담따먹기 몇 자락으로 십 분여 보내고 나면 설교는 어느새 마무리가 된다. 그리고 실제로 교회는 설교의 영성이나 지적 호소에 의해 교인들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예배 후 당회나 임직들과의 관계를 통해 움직여진다.
어떤 사실이 주어지면 연구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읽고 감상으로 받아들이는 습관적인 영성이 오늘날 가짜뉴스에 경도되는 수많은 목회자들의 본모습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책은 그럴듯하게 성도들을 감동시킬 예화집이나 설교집 뿐이다. 세상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신학자들의 주석서나 논문은 접할 시간도 없고 관심도 없다는 게 솔직한 사실 아니겠는가?
나는 평소에 반지성주의가 점령한 교회라는 데 대해 크게 관심도 없었고 설마 했었다. 하지만 요즘 교회 지도자들의 반응이나 전*훈 씨 같은 사람들, 여타 유명한 목회자들이 마치 커밍아웃이라도 하듯 이상한 말들을 하는 것을 보면 역시 그렇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처럼 위기극복을 잘 해나가는 정부를 공산주의 신봉자라 하고 국민을 위한 결정들을 모두 폄하해버린다. 그 중심에는 타당하거나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 그냥 공산주의자요 주사파라는 것이다.
어찌보면 신천*는 정부 정책에 찍소리도 안 하고 협조하는 편이다. 그에 반하여 교회 지도자들은 탄압이라고 한다. 근거는 예배 때문이다. 목회자 소득세 문제가 나올 때도 이런 얘기는 없었다. 교회 내 노조 얘기가 나올 때도 없었다. 그런데 신천* 얘기가 터져나오고 교회 내에 침투한 신천* 교인들의 획책 소식까지 들려오는데도 교회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그냥 그러려니 한 것이다.
국가에 대란이 일어나고 상당한 이슈가 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교회는 별로 크게 나서지 않았다. 그냥 일부 진보 세력들만 열심히 나댔다. 그런데 예배를 건드리니 이렇게 발끈하고 저항한다. 언제부터 그렇게 예배를 중시했고 그 예배가 한국 교회를 지켜냈던가? 주일마다 모여서 그렇게 울고불고 기도한 것들이 지금 얼마나 이루어졌을까? 그동안 이단 신천*는 창궐을 하고 전국 수십만 명이 생겼다. 그게 다 기도와 예배 덕분일까?
자기들 밥그릇 챙기느라 바빠서 이단이든 삼단이든 팽개쳐둔 교회들이 예배에 목숨을 건다? 웃기는 일이다. 이게 다 지성이 아닌 감성에만 치우쳐 '열받은 목사'들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닫힌 교회문을 보니 눈물이 난다고? 노동 현장에서 죽어가는 청년을 위해 눈물을 흘린 적이 있나? 그 교회 문은 가만히 둬도 괜찮다. 별 일 없으니 걱정 마시라. 그러고 교회문 닫힌 거 보고 눈물 흘리는 시간에 당신 주변에서 하루에 몇 명씩 자살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리는 게 낫지 않겠나?
세상에 대한 관심은 기도로 되는 게 아니다. 산에 올라가고 금식을 한다고 해서 세상에 대한 눈이 열리는 게 아니다. 그놈의 영안이 활짝 열려서 방언도 터지고 은사도 생기는 거 다 좋은데 그것도 김빠지면 여전한 건 아니고 다시 충전하러 산에 가야지 않나? 책을 읽고 생각하시라. 수영장 말고 노동의 현장을 찾으시고. 선교여행 말고 심방을 하시고 말이다. 차라리 책을 안 읽고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지 않으시려면 얼마 남지 않은 목회 여정에 막판 러시로 현장성 있는 목회를 좀 하시라는 얘기다.
예배 그만 좀 드려도 된다. 지금까지 목사님이 평생 드려온 예배 아닌가. 사람이 밥을 먹다가도 배가 부르면 쉬는데 그 예배 꽉꽉 채워서 천국 최상위권에 들고 싶어 그러시나? 필요하면 야외 예배도 하고 시간도 바꾸고 심지어 없애기도 하는 예배 아닌가? 그냥 교회에 누가 들어와서 들여다본다고 생각하니 기분 나쁜거 아닌가 말이다. 솔직해 집시다!
이제 그만들 정신 좀 차리시고 목회라는 타이틀에 집착하지 말고 예수가 사람들 틈에서 부딪히고 이해하던 눈으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 행동하는 믿음의 본을 보이는 그런 목회를 좀 하시는 게 어떻겠나? 세상을 좀 상식적으로 보십시다. 깝깝하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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