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 방송을 자주 듣다보니 일하는 도중에도 간혹 깊은 명상에 빠져들만큼 깊이 있는 설교를 접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일부 목회자의 설교는 솔직한 심정에 어찌 저런 설교로 방송에 나올만큼 큰 목회를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수박 겉핥기 식의 설교도 접하게 된다.
설교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를 한다는게 무리한 일임을 알지만 적어도 설교란 목회자적 입장에서의 설교가 아니라
듣는 청중의 입장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믿기에 일부 목회자의 설교에 공감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열정을 가진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어느 목회자가 설교를 했다. 그러나 설교를 끝까지 들었지만 열정을 가지라는
말을 들었어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열정을 가지는지에 대한 실제적 적용의 내용은 없었다. 그의 설교는 내내 열정적이었다.
그러나 열정이라는 단어가 반복되면 될 수록 그 열정을 가지는 방법이 무엇인가 빨리 말해주었으면 하는 생각만 커질뿐..
더욱 공허하고 어려운 단어가 되어가고 말았다.
결국 설교가 끝나고 나서까지도 그의 설교 중에는 어떻게 열정을 가져야 하는지 지침이 없었다. 무슨 책 이야기도 했고
다른 몇가지 확인안 된 예화도 들었지만 나의 궁금증은 내가 열정이 없다는 점과 어떻게 열정을 다시 가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으로 생각 자체가 뒤죽박죽이 되었다.
예배를 마치고 나서 집으로 운전해 오는 도중에 다시 극동 방송을 들었다.
역시 어느 목회자의 설교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의 설교는 앞서의 목회자의 설교와는 사뭇 달랐다.
방주를 만들게 하신 하나님이 주인공이었고 방주를 만들때에는 설계도에 의해 만들어야 하며 그 방주를 만드는
행위란 영적으로는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져가는 것이라고 설교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방주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교하는 것이었다. 아침의 미진한 궁금증에 머리가 아팠는데
이제 다시 주문 사항이 있는 설교를 들으니 다시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이어 그 목회자의 설교에는 매우 실제적이고 근거 있는 구체적 권면이 뒤따라왔다.
방주를 만드는 자라면 자신이 그리스도인 되어가는 것이므로 정해진 규칙, 즉 양심과 계명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더욱 구체적으로 성경에 있는 말씀들을 그대로 실천하며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말이다.
또 다시 이어지는 구체적인 권면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방주를 지을 수 있는 설계도를 받은 것이 바로
말씀이요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방주를 만드는 것이라는...지극히 이해하기 쉽고도 영적인 깊이가 있는 설교를
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의 실제적 이야기는 글이 길어져 더이상 쓸 수 없을것 같아 아쉽지만 오는 내내 그 설교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의 은혜를 넘치도록 체험했다. 믿음을 견고히 하자는 둥, 감사하자는 둥, 죽기까지 충성 하자는 둥..
별별 주문 사항이 많은 설교들이 넘쳐나지만 보다 구체적으로 성도가 그 주문 사항을 이행할 수 있는 지침들을
내려주는 설교자가 필요하다. 성도는 어떤 식으로든 성도이므로 목회자는 성도가 혼자서 말씀을 읽고 깨닫는
일반적인 큐티 수준에 해당하는 설교를 해서는 안된다.
오랜 기도와 깊은 명상, 그리고 하나님과의 긴밀한 영적 교감을 통하여 진정으로 말씀의 도구로 사용되었음이
분명한 확고하고 자세한 실천적 지침을 담은 설교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목회자의 설교는 솔직한 심정에 어찌 저런 설교로 방송에 나올만큼 큰 목회를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수박 겉핥기 식의 설교도 접하게 된다.
설교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를 한다는게 무리한 일임을 알지만 적어도 설교란 목회자적 입장에서의 설교가 아니라
듣는 청중의 입장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믿기에 일부 목회자의 설교에 공감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열정을 가진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어느 목회자가 설교를 했다. 그러나 설교를 끝까지 들었지만 열정을 가지라는
말을 들었어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열정을 가지는지에 대한 실제적 적용의 내용은 없었다. 그의 설교는 내내 열정적이었다.
그러나 열정이라는 단어가 반복되면 될 수록 그 열정을 가지는 방법이 무엇인가 빨리 말해주었으면 하는 생각만 커질뿐..
더욱 공허하고 어려운 단어가 되어가고 말았다.
결국 설교가 끝나고 나서까지도 그의 설교 중에는 어떻게 열정을 가져야 하는지 지침이 없었다. 무슨 책 이야기도 했고
다른 몇가지 확인안 된 예화도 들었지만 나의 궁금증은 내가 열정이 없다는 점과 어떻게 열정을 다시 가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으로 생각 자체가 뒤죽박죽이 되었다.
예배를 마치고 나서 집으로 운전해 오는 도중에 다시 극동 방송을 들었다.
역시 어느 목회자의 설교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의 설교는 앞서의 목회자의 설교와는 사뭇 달랐다.
방주를 만들게 하신 하나님이 주인공이었고 방주를 만들때에는 설계도에 의해 만들어야 하며 그 방주를 만드는
행위란 영적으로는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져가는 것이라고 설교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방주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교하는 것이었다. 아침의 미진한 궁금증에 머리가 아팠는데
이제 다시 주문 사항이 있는 설교를 들으니 다시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이어 그 목회자의 설교에는 매우 실제적이고 근거 있는 구체적 권면이 뒤따라왔다.
방주를 만드는 자라면 자신이 그리스도인 되어가는 것이므로 정해진 규칙, 즉 양심과 계명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더욱 구체적으로 성경에 있는 말씀들을 그대로 실천하며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말이다.
또 다시 이어지는 구체적인 권면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방주를 지을 수 있는 설계도를 받은 것이 바로
말씀이요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방주를 만드는 것이라는...지극히 이해하기 쉽고도 영적인 깊이가 있는 설교를
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의 실제적 이야기는 글이 길어져 더이상 쓸 수 없을것 같아 아쉽지만 오는 내내 그 설교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의 은혜를 넘치도록 체험했다. 믿음을 견고히 하자는 둥, 감사하자는 둥, 죽기까지 충성 하자는 둥..
별별 주문 사항이 많은 설교들이 넘쳐나지만 보다 구체적으로 성도가 그 주문 사항을 이행할 수 있는 지침들을
내려주는 설교자가 필요하다. 성도는 어떤 식으로든 성도이므로 목회자는 성도가 혼자서 말씀을 읽고 깨닫는
일반적인 큐티 수준에 해당하는 설교를 해서는 안된다.
오랜 기도와 깊은 명상, 그리고 하나님과의 긴밀한 영적 교감을 통하여 진정으로 말씀의 도구로 사용되었음이
분명한 확고하고 자세한 실천적 지침을 담은 설교를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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