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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 이해

오션지 2020. 5. 31. 00:02

평등의 뜻.

에리히 프롬은 그의 책 <사랑의 기술>에서 평등이란, 인간이 타인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칸트를 인용한다. 인간은 상호 목적인 한에서만 평등하다는 것이다.

프롬은 인간의 평등은 일체성보다는 동일성을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남자와 여자의 평등도 비개성화된 동일성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아담과 하와도 본래 대립된 관계 안에서의 동일성이 아니라 일체성에서 완전함을 보유했던 것 같다.

아담에게서 '분리'되어진 하와, 그리고 그 하와와의 일체성을 추구하는 아담에게서 인류의 확장이 시작되었다고 본다면 인간의 평등이라는 것은 이미 존재함으로써 양성의 동등, 또는 동성의 동일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합일의 상태를 향한 지향이라고 상상할 수 있겠다.

프롬은 그런 면에서 사랑이란, 인간과 인간의 합일성을 향한 추구라고 이해한다. 자, 교회 안에서 사랑은 제대로 이해되고 있고 전파되고 있을까? 종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사랑은 합일이 아니라 열정으로 변하기도 하고 추종이나 맹신으로 변하기도 한다.

프롬은 사랑이라는 것이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마르크스는 사랑이 없이는 사랑을 일으킬 수 없다고 일갈했다. 사랑의 무능력은 아무 능력이 없다는 이 말의 뜻은 깊이가 남다르다.

"인간을 인간으로서 생각하고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로 생각하라. 그러면 당신은 사랑을 사랑으로만, 신뢰를 신뢰로만 교환하게 될 것이다."

사랑은 책임이며 다른 인간 존재의 요구에 대한 나의 반응이다. 사랑과 책임의 관계는 불가분의 관계이고 책임을 진다는 것이야말로 사랑을 행할 수 있는 준비가 된다는 뜻이다. 즉, 우리의 모든 행동에 사랑을 부여하는 것은 곧 책임을 짊어지는 자발적인 행동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은 책임있는 행동을 하라는 뜻이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도 마찬가지로 이웃에 대한 자발적인 책임을 다하라는 뜻이다. 이런 사랑의 행동 상태가 지향하는 것이 바로 평등이다. 자발성과 일체성을 향해 나아가는 에너지가 사랑이자 평등이다.

이 사랑을 깊이 이해한 사람들이 자신을 헌신하여 무언가 왜곡된 것과 부당한 것, 그리고 고통스러운 것을 바로잡으려고 애쓰게 된다. 그리스도가 바로 그 예표이자 실증이고 그의 제자들인 그리스도인이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이 뚜렷한 정체성에 대한 굳건한 확신과 이해가 없이는 그리스도인이라 하기 어렵다. 필요에 의하여 찾은 종교시설 소속 멤버일 뿐이다. 최초의 원형적 사랑의 가현상태인 낙원, 그리고 인간 하나의 둘로의 분리, 자연 만물이 변화하는 원리 안에 사랑의 의미가 담겨 있다.

회복은 이런 사랑의 상태를 되찾는 것이다. 평등의 상태, 즉 사자가 어린아이와 뛰어놀고 배고픔과 눈물이 없는 평화의 상태가 오기를 바라는 것이 바로 사랑이며 사랑의 실천이다.

프롬이 말하는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의 가장 주된 주제를 요약했다. 오래전 대학생 시절에 전철에서 이 책을 들고 읽고 있는데 맞은편에 앉은 어르신이 젊은 사람이 뭔 그런 책을 읽고 있냐며 핀잔을 준 일이 있는데 그날 이후로 책에 커버를 씌워서 들고 다녔던 게 기억이 난다.

그때는 어렴풋하게 이해되던 프롬의 사랑 이론이 이젠 절실하게 다가온다. 지금 우리 시대에, 아니 우리 인류의 전 시대에 늘 요구되었던 것은 '사랑', 바로 그것이다. 진짜 사랑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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