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
우리집 두 여자가 뭔가 소곤거리면서 내 눈치를 본다. 큰 여자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고 작은 여자는 내 눈만 보면서 말이다. 언어가 인간의 소통에 대부분의 요소가 아니라는 내 주관에도 불구하고 익숙하지 않은 이런 눈의 대화는 사실 불편하다.
큰 여자에게 물었다.
"왜?"
남자의 질문이 큰 여자에게 던지는 Thor식 망치의 무게를 생각하면 대화법으로서는 빵점인 질문.
작은 여자가 대답한다.
"엄마가 사고쳤대요~"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혹은 일개 촌 아줌마든 자기 잘못을 왜 대변인 동원해 말하는지 인간사 만사에 일맥상통하는 도덕적 뒤틀어짐이 이것이다....
남자가 다시 묻는다.
"아, 왜?"
이 질문은 Thor의 망치가 주인을 찾아 몇 개의 우주를 헤매다 마침내 주인을 만났을 때 주인은 다 죽어가는 황당한 상황에 견줄 만한 무게의 2차 질문이다.
큰 여자는 뒤로 숨고 작은 여자가 내 앞에 떡하니 서서 다시 말한다.
"아빠, 엄마 사랑해?"
"뭔 또라이 같은 소리야~"
요즘 잘 나오는 무슨 개그 프로그램에서 박지선이 하는 말이다.
큰 여자는 크지도 않은 눈망울을 굴리면서 겨우 대답한다.
"내가 중요해, 아님 차가 중요해?"
"차 뿌셨냐?"
이 대화가 우리 가난한 시골 가정에 주는 데미지가 강남권이나 신도시권 거주자들에게 어떻게 가 닿을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 궁금증이 해소된 뒤에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는 화딱지를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작은 여자다.
"아빠, 엄마가 더 중요하지?"
내 눈 앞에 멀쩡히 서서 이 난국을 타개해 나갈 궁리를 하고 있는 큰 여자가 저렇게 당당히 살아있고 외관상 미미한 스크래치도 없는데 그게 지금 중요한가? '일단 살아있으니 좀 맞자'고 하셨던 고등학교 선생님의 매질이 순간 퍼뜩 떠올랐다. 작은 여자가 내 눈을 뚫어져라 살폈던 이유는 내가 주로 눈으로 말하는 사람이라 그랬다.
바로 밑으로 내려가 차를 보니 앞 범퍼의 한 쪽이 너덜너덜하고 있었다. 새 차가 아니니 망정이지 새 차였다면 큰 여자는 지금쯤 친정에 가서 반성문을 쓰겠다고 할 지도 모른다. 내가 그리 광폭한 사람이 아님에도 군인의 딸이었던 큰 여자는 늘 그렇게 자기 잘못을 스스로 정죄하는 습관이 있다. 내게 큰 여자의 안전과 행복보다 중요한 가치가 몇이나 있을까. 나를 위해 아이들 셋을 목숨을 걸고 낳았다. 부족한 구도자의 길에 동참해 영적 가치보다는 삶의 가치에 짓눌려있어도 자기 속의 고통은 잘 내비치지 않는 큰 여자다.
어제의 일이었고 오늘 아침에 큰 여자가 명하신 곳까지 태워다 주고 들어오면서 밝은 아침에 앞범퍼를 보니 어제 큰 여자와 작은 여자 둘이 처음에 소곤거리던 내용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매우 궁금해진다. 작은 남자들 둘이 더 있어 봐야 쓰잘 데 없다. 놈들은 그저 아이폰이나 붙들고 거기 무슨 광맥이나 있는 듯 머릴 박고 있을 뿐 이 대화가 오가는 동안 귀머거리들이었다. 배워야 사느니. 여자들의 맹랑한 작업에 휘말려 마땅한 분을 의도치 않게 참아야 했던 큰 남자의 어리석음을 배워야 손해 없는 삶이 될 것이다. 이 눔들아!
우리집 두 여자가 뭔가 소곤거리면서 내 눈치를 본다. 큰 여자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고 작은 여자는 내 눈만 보면서 말이다. 언어가 인간의 소통에 대부분의 요소가 아니라는 내 주관에도 불구하고 익숙하지 않은 이런 눈의 대화는 사실 불편하다.
큰 여자에게 물었다.
"왜?"
남자의 질문이 큰 여자에게 던지는 Thor식 망치의 무게를 생각하면 대화법으로서는 빵점인 질문.
작은 여자가 대답한다.
"엄마가 사고쳤대요~"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혹은 일개 촌 아줌마든 자기 잘못을 왜 대변인 동원해 말하는지 인간사 만사에 일맥상통하는 도덕적 뒤틀어짐이 이것이다....
남자가 다시 묻는다.
"아, 왜?"
이 질문은 Thor의 망치가 주인을 찾아 몇 개의 우주를 헤매다 마침내 주인을 만났을 때 주인은 다 죽어가는 황당한 상황에 견줄 만한 무게의 2차 질문이다.
큰 여자는 뒤로 숨고 작은 여자가 내 앞에 떡하니 서서 다시 말한다.
"아빠, 엄마 사랑해?"
"뭔 또라이 같은 소리야~"
요즘 잘 나오는 무슨 개그 프로그램에서 박지선이 하는 말이다.
큰 여자는 크지도 않은 눈망울을 굴리면서 겨우 대답한다.
"내가 중요해, 아님 차가 중요해?"
"차 뿌셨냐?"
이 대화가 우리 가난한 시골 가정에 주는 데미지가 강남권이나 신도시권 거주자들에게 어떻게 가 닿을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 궁금증이 해소된 뒤에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는 화딱지를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작은 여자다.
"아빠, 엄마가 더 중요하지?"
내 눈 앞에 멀쩡히 서서 이 난국을 타개해 나갈 궁리를 하고 있는 큰 여자가 저렇게 당당히 살아있고 외관상 미미한 스크래치도 없는데 그게 지금 중요한가? '일단 살아있으니 좀 맞자'고 하셨던 고등학교 선생님의 매질이 순간 퍼뜩 떠올랐다. 작은 여자가 내 눈을 뚫어져라 살폈던 이유는 내가 주로 눈으로 말하는 사람이라 그랬다.
바로 밑으로 내려가 차를 보니 앞 범퍼의 한 쪽이 너덜너덜하고 있었다. 새 차가 아니니 망정이지 새 차였다면 큰 여자는 지금쯤 친정에 가서 반성문을 쓰겠다고 할 지도 모른다. 내가 그리 광폭한 사람이 아님에도 군인의 딸이었던 큰 여자는 늘 그렇게 자기 잘못을 스스로 정죄하는 습관이 있다. 내게 큰 여자의 안전과 행복보다 중요한 가치가 몇이나 있을까. 나를 위해 아이들 셋을 목숨을 걸고 낳았다. 부족한 구도자의 길에 동참해 영적 가치보다는 삶의 가치에 짓눌려있어도 자기 속의 고통은 잘 내비치지 않는 큰 여자다.
어제의 일이었고 오늘 아침에 큰 여자가 명하신 곳까지 태워다 주고 들어오면서 밝은 아침에 앞범퍼를 보니 어제 큰 여자와 작은 여자 둘이 처음에 소곤거리던 내용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매우 궁금해진다. 작은 남자들 둘이 더 있어 봐야 쓰잘 데 없다. 놈들은 그저 아이폰이나 붙들고 거기 무슨 광맥이나 있는 듯 머릴 박고 있을 뿐 이 대화가 오가는 동안 귀머거리들이었다. 배워야 사느니. 여자들의 맹랑한 작업에 휘말려 마땅한 분을 의도치 않게 참아야 했던 큰 남자의 어리석음을 배워야 손해 없는 삶이 될 것이다. 이 눔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