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인도 뱅갈루르 방문기

오션지 2010. 3. 30. 00:19

광배에게 갔다 왔습니다.

델리에서 기차를 타고 36시간에 걸친 긴 여행끝에 드디어 뱅갈루르 기차역에 내렸을때는

새벽이었습니다. 전화를 하니 광배가 어디로 오라고 알려주길래 오토릭샤를 잡아타고

달려갔습니다.

마침 새벽 예배중이었던지라 괜히 너무 일찍 전화를 했나 생각했습니다만, 광배가 요령껏 빠져나와서

일단 잠시 기다리다가 예배가 끝난 후 광배와 함께 식사를 하고 숙소에 들어갔습니다.

델리에 도착해서 처음 들어간 숙소가 게스트하우스였는데 한국인에 대한 배려가 잘 되어 있어서

좌변기였습니다. 그러나 광배가 마련해준 숙소는 인도식 변기였습니다.

인도식 변기는 잘못하면 거꾸로 앉아 볼일을 보기 쉽습니다.

처음에 저도 역시 처음 대하는 인도식 변기라서 물구멍이 있는 쪽을 앞으로 알고 앉아보니

벽이 코앞에 닿길래 이건 아니다 싶어 뒤로 돌아앉아보니 역시 그게 바로 앉는 것이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인도식 뒷처리를 할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결국 선교지에서 훈련받으러 온것도 아닌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나 싶어서

준비해간 '물에 잘 녹는 물티슈' 제품을 이용해서 볼 일을 해결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저의 뱅갈루르 방문은 그 날을 필두로 선교지에서의 몇가지 돕는 일로 이어졌습니다.

제가 본래 생각한 일정은 광배를 만나 삼 사일정도 선교사역 및 선교지를 둘러보고

제 나름으로 뱅갈루르 지역의 인터내셔널 스쿨들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현지에 와서

몇가지 정보를 수집해본 결과 인터내셔널 스쿨들은 제가 생각하는 것과는 좀 차이가 있었기에

그냥 큰 아이 학교는 델리로 정해야겠다 생각하고 다른 일정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뱅갈루르와 델리의 차이점을 가장 주안점을 두고 보았고 델리의 행정과 뱅갈루르의 행정상의

시차는 얼마나 되는가, 시설과 교통 역량들은 어느 정도 갭이 있는가 정도 살펴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물가도 좀 알아보려고 백화점을 들렀습니다.

그리고는 숙소로 돌아와 광배가 사역하는 신학교 현장을 돌아보고 다녔는데 참 놀랐습니다.

일단, 제가 생각하는 세인트 폴 학교와는 너무나 다르고 엄청난 선교 사역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간혹 광배로부터 오는 선교 소식지만으로는 그 규모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는데

현지에 가보니 정말 입이 벌어질 정도의 놀라운 역사와 하나님 살아계심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 놀란 것은 선교지에 섬기러 온 젊은 단기 선교사들과 각종 달란트에 맞게 현지에서 봉사하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실은 제가 델리에 있을때 광배에게 가려고 마음을 먹고 기차표를 알아보니

36시간짜리가 가장 빠른 익스프레스 열차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36시간을 달려갈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하고 그냥 가기 싫은 느낌도 들었더랬습니다.

그러나 왠지 마음이 자꾸 뱅갈루르에 가게 되고 이유없는 절박함 같은 것이 있었는데

아내에게 이런 사실을 채팅으로 얘기했더니 안갔으면 하는데 정히 그렇다면 몸조심하고

다녀오라고 해서 결국 36시간 열차를 예매하고 무작정 밤기차를 타고 출발했던 것입니다.

 

뱅갈루르에서는 저의 미약한 힘이지만 도울 일이 꽤 있었습니다.

몇가지 소소한 일이지만 역시 주님께서는 저의 손길을 통해서 하실 일이 있으셨습니다.

암튼, 그렇게 며칠을 돕고 다시 델리로 올때는 비용을 무릅쓰고 일정에 쫓겨 인도 국내선 항공기를

타고 델리로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델리에 와서 이것저것 정리하고 광배 일을 생각해보니 참 광배가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제가 글로 다 남기지 못하는 피나는 선교 현장의 역사와 그 결과물은 현지에 가서야 진정으로

깨닫고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누구도 쉽게 그 현장에는 가지 못할 것입니다.

시간과 거리가 그러한 것을 허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현지에 가보신다면 세인트 폴을 중심으로 광배가 담당하는 신학교 사역까지...실로 거대한

프로젝트가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고 수많은 손길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임을 절감하게 됩니다.

 

세인트 폴은 현재 약 2000명의 학생들이 일반과목을 배우고 있습니다. 다만, 표면적인 것 이외에

이면적인 교육에는 성경과 신앙이 잘 접목되어 있어서 아이들이 매일 등교시 첫 수업 전에 성경을

암송하고 찬양으로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세이트 폴에 어떠한 미래가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 모든 사역의 저변에서는 수십년전에 척박한 뱅갈루르 땅에 도착하여 코흘리개 아이 하나를 가르치며

세인트 폴 스쿨을 시작하셨던 두 분 목사님 내외가 있었습니다.

정말 뭐라 표현할 길이 없는 엄청난 수고와 눈물과 땀과 노력의 결실로 하나 둘 씩 아이들이 늘어가고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서도 인내하며 이겨내고 지방 정부와도 수많은 밀고 당김의 연속되는

고난을 견뎌내어 드디어 지금과 같은 결실을 얻어낸 산 역사의 현장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저도 이틀째부터는 새벽예배를 필두로 선교사무실에 출근하다시피 해서 나름대로 바쁜 일정때문에

허겁지겁 돕는 손길을 드렸지만 제가 다음에 델리에 가면 꼭 다시 뱅갈루르에 가서 못다한 일들을

마무리 지으려고 다짐해봅니다.

광배의 사역은 그렇게 세워진 세인트 폴 스쿨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학생 양성 사역입니다.

조만간 현장에서 찍어온 사진들 게재하고자 합니다. 현재는 세인트 폴 스쿨이 교실이 부족할 정도로

아이들이 매년 늘어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최근에 세인트 폴 스쿨 학생들이 지역에서 시험 성적

1등을 마크했기 때문에 근처에서는 명문 아닌 명문으로 이름이 났기 때문입니다.

제가 몇군데 인도 학교들을 둘러봤지만 아이들 교복이나 태도나 외모 등등이 비교적 지저분하고

규율이 없어보였는데 세인트 폴 스쿨의 학생들은 아주 단정하고 태도가 바를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이 아이들이 성경을 배우고 있어서인지 그 눈빛 하나 하나에 말할 수 없이 맑은

그리스도의 마음이 엿보인다는 사실이 가장 기뻤습니다.

 

선생님들도 아주 신실한것 같았습니다. 따로 기도실도 있어서 교사들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그곳에

가서 기도할 수도 있고 이직률도 낮아서 교육에 아주 적극적이라고 합니다. 이 모든 일 외에도 제가

다 적지 못하는 선한 역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광배가 가족들과 함께 그 곳에서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열심히 사역을 하는 모습을 보니 제가 다 뿌듯합니다.

지금도 그곳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광배와 사모님, 형진이, 하경이, 그리고 디모데 선교사님, 조슈아 선교사님,

갈렙 선교사님, 모세 선교사님, 그리고 친절하셨던 모니카 선교사님, 카펜터 아이작, 파스터 심보이, 등등..

기억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립습니다.

며칠간의 만남이었지만 정말 오랫동안 지낸것처럼 여러가지를 나누었던 시간 같습니다.

저를 대접하기 위해 여러모로 애쓴 광배에게는 깊은 감사를 느낍니다.

 

다시 갈 곳이기 때문에 광배에게는 이별 보다는 간단한 인사만 하고 돌아왔습니다.

마치 며칠 어디 갔다가 다시 올것처럼 말이지요. 제 계획대로라면 정말 조만간 다시 갈 인도지만

이곳에 와서 며칠 지내다보니 다시 이곳 생활에 적응이 되고 마는것 같아서 좀 어리둥절하기도 합니다.

암튼, 인도는 재미있는 곳이고 또 서글픈 곳이기도 합니다.

현대와 고대가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고 부와 빈이 함께 어울려 있으면서 서로 마찰하지 않으려고 하며

가능한한 최대한 서로를 인정해주려고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어느날 밤, 선교사무실에서 나오는데 길 가 어느 집에서 정말 아름다운 찬송가 소리가 들리더군요.

90%가까운 힌두교 국가의 한 귀퉁이에서 한 밤중 아련한 가로등불빛 아래 야자수 그림자가 드리워진

길가 어느 집에서 들려오는 그 아름다운 찬송가 소리를 들으며 한 참을 서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슴 가득히 감사와 기쁨을 담아가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영적으로 척박한 이곳에 뿌린 선한 씨앗이 열매를 맺어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