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사회로부터 다양한 혜택이나 도움을 받는 OECD 국가의 면모를 벗어난다는
희망섞인 소리들이 연일 언론을 통해 발표되고 있다.
그에 따라 외국인들도 더욱 탄력을 얻어 우리 사회에 하나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발판을
더욱 공고히 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도 수혜국의 입지를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늘 한발씩 늦게 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용산역의 광경이다.
많은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교통카드 충전기앞. 1회용 지하철권과 교통카드충전이 동시에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몇몇 사람들이 내 뒤에 서서 두런거린다.
"맞다"
"아니다"
맞다. 1회용 지하철표를 끊을 수도 있고, 교통 카드 충전도 할 수 있다.
놀라운 건, 분명히 기계 앞에 써있는데도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설치자 위주의 표시였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안내문이 없어서 일어나는 이러한 혼란쯤은
시간이 해결해줄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에서 나온 결과다.
내가 표를 끊으려고 서있는 동안에 더 많은 사람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저 쪽 한쪽 편에 있는 줄에는 외국인들이 있었는데 이 골때리는 기계가 인종차별이라도 하는지
그 외국인의 터치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젓가락질 잘하는 한국 사람이 완전고수 내공으로 찔러대서 잘 인식하는건지도 모른다.
그 외국인은 뒷사람이 기다린다는 중압감에 엄청 버벅댔고 나는 그걸 보다 못해
내 손가락으로 내공을 실어 꾹꾹 눌러주었다.
엄청 성질난 얼굴이었던 나를 바라보는 외국인의 얼굴은 아바타에 나오는 파란색이었다.
질렸던 것이지. 내 얼굴에..
하지만 난 그에게 화난게 아니라 이 형편없는 충전긴지 판매긴지에 열받았기 때문이었는데
그걸 거기서서 설명하다간 맞아죽을것 같아서 포기하고 그냥 표만 끊어줬다.
에라이~~
먼 놈의 인간이 이리도 많은가, 짜증이 확 몰려서 표 끊고 뒤로 물러나서 보니 고장이 나셨다.
이 기계 고장은 용산역을 우리 부모님 집보다 더 자주 찾아가는 나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아주 친숙한 모습이다.
저걸 고치는 저 여성의 손길도 기계적이다. 숱하게 다뤄본 솜씨라는 말씀. 서울시가 얼마나 예산들여서 했는지 나는 모른다. 또, 나는 경기도에 세금내는 사람이니 서울 사람들 세금으로 떡을 사먹든 불을 싸지르든 일차적으로는 관심밖이다. 그러나 저런 낭비성 고장에 대해 근본적 처방은 없고 저런 리얼리티를 자주 연출하시는 용산역의 베짱에는 경의를 표한다.
이들처럼 50대 가량 된 분이 표를 끊는데 손가락으로 터치를 하려고 해도 잘 안될뿐더러 목적지도 잘 못찾는다. 그러자, 뒤에 서서 기다리던 외국인이 아저씨 대신에 꾹꾹 잘도 눌러주신다. 대한민국에 설치된 기계를 국민이 잘 못다룬다. 그래서 외국인이 도와준다.
그게 뭐 이상하냐고? ㅎㅎㅎ
아니다. 저 표를 끊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목적지를 고르는 저 버튼들에는 영어가 한자도 없다. 완전 한글판이다. 게임을 한글판 만들어 달라면 어떨까? 저 지하철 승차권 판매기에는 목적지 고를때 한글만 나와있다.
중국 사람이나 미국 사람, 동남아 사람, 아프리카 사람, 러시아 사람들 모두 위대하고 위대한 한글을 배워야 한국 지하철을 쉽게 탈 수 있겠다.
그런데 아저씨가 잘 모르자 뒤에 있던 외국인이 꾹꾹 눌러서 빨리 끊어주고 자기도 빨리! 표 끊어서 가버리더라. 내가 오늘 완전 열받아서 한참이나 뒤에 서서 이 리얼다큐를 찍었던 이유는 또 있다.
멍하게 하염없이 바라보는 글자..
'점검중'
저 아점마가 왜 저기 서 있나...점검중인데..그럴수밖에 자기가 끊으려고 하는데 점검중 나왔으니 퐝당해서지 뭐...기계는 얼마나 송구하겠는가..그저 '이용에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라는 글만 뱉어놓고 있을 수밖에..
저 상황..용산역 자주가는 내게 또 역시 전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저 아점마는 조금 기다리다가 표를 끊어갔겠지?
아점마 이야기나 나왔으니 한마디 더하자.
세종대왕께서 이 추운 날씨에 광화문 네거리 광장 한가운데 앉아계시니 얼마나 추우실까만,
내 글을 읽는다면 열받아서 벌떡 일어나 달려올 일인데..
어떤 아줌마께서 내 옆에서 표를 끊을 때였다.
(참 신기한게 이 모든 일이 내가 표끊는 약 10분만에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사진은 맹세코 오늘 10분동안에 찍은 것이다. 이만하면 리얼 아닌가!)
그 아점마께서 가고자 하는 곳은 의정부역이었다.
당연히 1회용을 끊으려고 하니 1회용 누른다음 나오는 선택화면에서 아점마께서 아시는 바대로
'의정부'의 '의'가 'ㅇ'으로 시작하니 'ㅇ'을 눌렀다.
그러자 'ㅇ'으로 시작하는 역명이 주루룩 나왔다. 그런데 위에서부터 살펴보시던 아점마께서는
자기가 찾던 역이 없자, 밑에 있는 1/5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화면이 넘어가는데
역시 거기서도 없다...ㅜㅜ 그러니 이쯤 되면 가뜩이나 화면 전환도 시원찮은데 당황할만하다.
결국 뒤에 기다리던 사람을 의식해서인지 아점마께서는 그냥 혼잣말로
"의정부 갈려면 어디 눌러야되요?" 라고 하신다.
나는 순간, 의정부? 그렇구나!
'ㅇ'에서 'ㅏ,ㅑ,ㅓ..'순서대로 하자면 'ㅇ'에다가 'ㅏ'를 붙여서 '아'로 시작하는 역부터 나오는게로구나!
역시..난 머리가 좋구낭! ㅋㅋ
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그럼 '의'는 뭐 다음에 나오는거지?
당연히 '의'는 'ㅇ'에다가 'ㅡ'를 붙인 후 다시 'ㅣ'를 붙여야 나오는 거지..
그럼 아점마는 '의'를 찾기 위해서 뒤로 더 가야하는데, 당황한 아점마는 '의'를 찾기 위해
뒤로 더 가면 '의'가 아닌 다른 '뭔'가가 나올까봐 엄청 당황한듯 했다.
그래서 오지랍 넓은 내가 끼어들어 이미 세번째 에러를 생산해내고 계신 아점마께
계속 누르라고 하자 네번짼지 세번짼지에서 '의'로 시작하는 반가운 '의정부'역이 나오는 것이었다.
정말 된장스런 상황이었다.
외국인이 표를 끊을때 어떻게 알고 끊는지 정말 신기할 정도였다. 그 외국인은 내가 한국사람인데도 보도 듣도 못한 역이름을 척척 검색해서 잘도 끊어가더라..
참, 외국인만도 못한 한국인이로구나..내가..
자, 여기 또 고장이 난 상황이다. 사람들은 인제 거의 외면한 상태이고 나는 재빨리 충전을 한 후라서 뒤에 서서 이 기묘한 10분간의 리얼 액시던츠를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막내가 지하철을 타기 위해 어린이용 교통카드를 들이대고 나오는 상황인데, 실은 들어가는 쪽에서 나가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지만서두..ㅎㅎ 암튼 중요한건, 이 위대한 대한민국 교통 당국에서는 키 160센티미터 이하를 루저로 보는 세태를 충실히 따르기라도 하듯이 아이들은 전혀 배려하지 못한 이 어이없는 눈높이로 이 나라 새싹들을 대접하고 있다.
애들이지만 지 카드에서 얼마가 빠져나가는지 볼 권리는 있다.
내 딸이 키가 작은게 죄라면 죄인가! 까치발을 해서 들여다봐야 겨우 보이는 이 상황을 기계 만들어 설치하는 사람들은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있고, 이것을 관계 당국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용산은 루저의 출입을 은연중 제한하는지도 모른다....는 음모론! ㅎㅎ
참 높은 세상이다.
외국인은 한글 배워야 지하철 제대로 이용할 수 있게 만든 나라..
아이들은 팔딱거리며 이용해야하는 개찰구...
어느 곳에는 안에, 또 어느 곳에는 밖에 지 맘대로 위치한 화장실들..
전혀 직관적이지 않고 서울 사람들이나 알아보게 만든 이정표들..
아이들은 붙들지도 못하게 만들어놓은 열차 내부 손잡이...
이 외에도 꽤 많은 문제점들이 있지만 적기도 귀찮다.
그냥 애덜이 빨랑 커서 어른만해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또는,
그저 내가 불편한걸 감수하고 살면 맘이 편하겠거니 하고 생각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만세한국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