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12월 25일 성탄절이었다.
내가 태어난 건 바로 그날이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는 날을 기념하여 이름을 지었는데 그 까닭에 내 이름에는 거룩한 성 자가 들어간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내가 태어나던 날 밤에 어머니께서 꿈을 꾸셨는데 그건 분명 태몽은 아니었을 것일테지만 꿈 속에서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 귀히 될 사람이니 잘 키우라고 했다는 것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내가 무슨 나라를 구할 인물도 아닌데 탄생 설화가 필요할 이유가 없었기에 자식 사랑하는 마음에 증명안되는 일인만큼 지어내실 수도 있겠거니 하고 지금까지도 딱히 기억하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교회를 다니면서 간혹 그런 생각이 날때가 있는 것을 보면 사람의 마음이란 은근히 자기 위주의 속셈은 다 있는 것인가 보다 하는 생각은 한다.
태어난 집안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지만 그래도 사람이 자기 길을 헤쳐나가는데에는 그러한 비운명적인 요소가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결코 부잣집이나 권세가 있는 집안 출신이 아니다. 게다가 부모님은 그야말로 촌부요 시골 아낙네일 뿐이었다. 그 윗대 조상을 살펴보고 또 찾아보아도 내로라할 위인은 딱이 없는 평범한 집안인 바, 내 인생의 어떤 결론을 추측할만한 근거라고는 혈통상에는 전혀 없는 사람이 나다.
그럼,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은 내가 어떤 자격이 있거나 내세울만한 것이 있어서 기록해두어야할 필요가 충분한가 하면 그것 역시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온 발자취를 자기 스스로만이라도 기억하고자 하는 마음을 나는 일찌기 터득한 바가 있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천성의 특혜라 한다면 내가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미련할만큼 정직한 아버지의 삶이요, 아둔할만큼 끈질긴 어머니의 생활력이다.
아버지의 정직성이나 어머니의 질긴 생활력을 내가 고루 내려받아 내 유전자 속에 제대로 아로새겨져 있었다면 나의 삶은 지금보다도 훨씬 더 만족스러울것이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부모님의 우성적 유전인자를 충분히 전달받지 못하였고 그 윗대 조상들의 열성적 유전자를 다소 받은 까닭에 정직하다는 칭송도, 부지런하다는 찬사 역시도 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 나는 왜 이런 글을 써야 하며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하였는가?
인터넷이라는 총아이면서도 괴물인 양면적, 야누스적 문명의 이기는 사람을 인간 이하로 만들기 쉬운가 하면 어느 한 순간에 한 인간의 운명을 구름 위에다 얹어놓을 수도 있는 마이다스의 손을 가지고 있다. 검색이라는 보통명사와 게시판이라는 공적 대자보, 그리고 댓글이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려 하고 있고 누군가로부터 비난받거나 용서받거나 치유받을 수도 있는 이 길에 당당히 서려 하고 있다.
과연 옳은 일인가를 스스로 논하기 전에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진실할 수 있는가?" 라고.
나는 비록 많은 사람이 찾지 않는 이 작은 블로그를 통하여 내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나갈 것이며 앞으로 내 아내와 자식들이 이 자화상을 통하여 나라는 존재에 대해 보다 객관적이고 주체적으로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는 이 글을 쓴다.
호랑이와 사람이 다른 점은 무엇을 남기느냐가 아니다. 무엇을 위해 사느냐에 있다.
내가 짐승이 아닌 이상 분명히 나의 삶에는 목표가 있었을 것이고 그 목표를 이루고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두고 내 삶의 가치를 논해야 마땅한 일이고 만일 내 삶이 그러한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못할만큼 무가치한 것이라면 나는 이 세상에 대하여 참으로 못할 짓을 한 셈이 되는 것이며 나와 연관을 맺고 나를 알고 나를 겪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존재로서 살아온 것이 아니라 길바닥의 수많은 돌멩이처럼 당연한 존재로서만 존재해왔던 하나의 '있는 것'이었을 뿐인 것이다.
만일 그러한 평가를 받는다면 나는 참 재미없고 무의미한 삶을 살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나는 내가 살아온 삶의 흔적을 남기고 싶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나의 삶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비추어보는 거울로 활용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