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엄마손이라고도 하는 등긁게...
시장에 가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생활필수품이 된 것이지만
가까이 없거나 잃어버리면 그 안타까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이 등긁게야말로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이다.
타고난 건성 피부로 인해 나일론 성분이 조금이라도 들어가 있는 옷을 입으면
금새 온몸이 반응한다. 예민성 반응이다.
그래서 등긁게를 가까이 두고 자주 사용하는 편이었는데
요새는 날이 추워지니 등긁게가 몸에 닿는 느낌이 서늘해서 잘 안쓰게 된다.
이때 이 등긁게를 대신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마눌님의 손이다.
사람 손이 등긁게에 비하랴..
손가락이 가진 그 오묘한 재주는 가려운 등의 이곳 저곳을 아주 잘 유린하며
그 어떤 쾌감보다도 시원한 만족감을 선사해주는 것이다.
마눌님이 등을 긁어주는 것에 비견할 어떤 즐거움도 찾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나의 마눌님은 나의 등을 긁어주지 않으신다.
왜냐...
내 등과 자신의 손가락이 닿는 느낌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 등이라는게 겨울철이면 으레 옷을 두껍게 입기 때문에 여름과 달리
좀 청결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내가 무슨 험한 노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먼지 구덩이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도 아닌데 내 등에 더러운 것이 있을게
무엇인가...
그러나 아내는 나의 등을 긁는 것을 지렁이 만지는 것만큼이나 어려워한다.
몇 차례 결혼 후 신혼기분에 시도해본적이 있긴 하지만
역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아내의 거부반응은 더욱 심해진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는 어떠한가..
아내는 내가 등을 긁어주면 마치 강아지가 주인 손에 꼬리치듯 아주 시원해 한다.
이건 뭔가.
복수심이 치밀어 어느 때엔가는 등을 아주 세게 긁어준 적이 있었는데
고통을 느껴야 마땅한 아내는 찜질방에 온듯한 편안한 반응을 보이는게 아닌가...
역시 여자들은 살 두께가 남자와는 다른가보다..하는 생각이 들뿐이었다.
그런데,
요즘엔 등긁게가 필요없는 나날이 되었다.
귀엽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우리 막내, 가은이가 나의 등을 긁어주기 때문이다.
조막만한 손으로 요리조리 나의 원격 조정을 통해 적재적소를 넘나들며
생애 최고의 쾌감을 주는데는 그 어떤 보물보다도 더 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로서 부족함이 없다.
물론, 나 역시도 가은이의 등을 긁어주는 것은 당연하다.
내 피부를 닮아서인지 건성인데다 민감한 피부를 가진 가은이는
잠자리에 들어 잠들기 전에 나의 등긁기 신공을 통해 더욱 잠을 잘잔다.
어제는 나에게 자기가 어른이 되어도 등을 긁어달라는 약속을 해달라고 한다.
그러나 그건 당연히 안될말..ㅎㅎ
내가 가은이에게 말했다.
나중에 남편감을 찾을때는 반드시 너의 등을 긁어줄 수 있는지 확답을 받고
구하라고..
지금 나의 아내는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 헌신하고 전적으로 믿어준다.
간혹 친구들을 만나 아내 험담을 늘어놓긴 하지만 진짜로 미워해야할 아내라면
입에 담는것조차 싫은 것이다.
그런 아내는 역시 완벽하지는 않다. 등만 긁어줄 수 있다면 아내는
완벽한 내조자일텐데 말이다.
그렇다.
부부란, 완벽한 존재끼리 만나는 건 아닌가보다.
서로 조금씩 부족한 부분들이 맞아들어가 하나의 완전한 '구'가 될때
부부는 완성되는가보다.
그리고 그 불완전한 부분은 부부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바로 아이들..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이 나머지 부분을 채워주면서
가족은 부부와 아이들로 이루어진 완전체가 되는가보다.
비록 등을 긁어주지 못하는 까닭에 나로부터 만점을 받지 못하는 아내지만
그 부족은 막내 가은이가 채워주고 있다. 또한 나 역시 아내에게는 부족한 부분이 있고
그 부분들을 아들들이 채워주고 있다. 그러고보면 내가 많이 부족한 모양이다.
아들이 둘이니까.
어디선가 나타날지도 모를 대나무 등긁게...
그게 나타나면 나는 혼자서 등을 긁을지도 모른다. 또 그렇게 만족하며 살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은이와 내가 서로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면서 얻어내는 교감적 만족과는 다르다.
정신의 교감만으로는 충분히 아름다울 수 없는, 감각적 교감이 있어서 더욱 완전해지는
관계도 반드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