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쯤인가 옥천에 있는 헌책방을 들렀다.
한쪽 코너를 가득 채운 많은 헌책들 중에서 밋밋한 군청색 하드 커버 책이 보였다.
얼핏 보니 원서인데 제목이 The year of living biblically였다.
호기심이 생겨 첫장을 펼쳤는데 수염 덥수룩한 저자의 모습과
이 책을 쓰게 된 계기 등이 서론에 나와 있었다.
잠깐 구경만 하려고 했던 책이었는데 그날 오후 내내 그 책을 붙들고 읽게 되었다.
거금 3000원에 구입한 원서였기에 ㅎㅎ...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정말 재미있는 것이 아닌가.
저자는 A.J.Jacobs. 미국 에스콰이어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작가인데
기회가 있어서 성경을 사서 읽거나 관련 논문등을 읽으면서
자신이 직접 뽑아 놓은 성경의 여러가지 계명들을
가지고 1년동안 그대로 살아보는 삶을 체험하게 된다.
아직 전반부를 다 읽지 못했지만 얼마나 글을 재미있게 쓰는지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도 크득거리고 읽게 되고
밤늦에 이 책을 붙들고 혼자 컥컥 거리면 아내가 뭐하냐고 핀잔도 준다.
심플하고 위트가 넘치는 작가다운 글솜씨로 재미있게 자신의 매일 매일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내가 평소에 관심이 많은 맥킨토시 파워북이라든가
PDA Treo700 등 눈에 익은 기종들이 등장할때마다
호기심이 더했다.
특히 수염을 자르지 않고 계명대로 계속 기르거나
옷감도 계명에 따라야 하니 그대로 따라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내와의 잠자리 역시도 계명에 따라야하는데
아내가 생리중인 경우에는 서로 닿지 않아야 하니 멀찌감치 떨어져서
차 키를 주고 받는 장면에서는 정말 폭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하나 하나 나열하기가 어려울만큼 그의 글은 재치가 넘치고
유머가 가득하다.
한참을 읽다보니 부족한 영어실력에 해석이 막히는 곳이 있어서
혹시 번역본이 없나 찾아보았더니 이미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지 한참되었다.
나만 모르고 있었다니..
하지만 막상 번역본을 보고 싶은 마음이 그리 큰 것은 아니라서 구입은 미루었다.
그냥 워서 자체가 주는 오리지널리티가 더 매력있지 않을까.
암튼 추천이다.
번역본도 이수정씨가 번역했는데 그 분은 나를 모르지만 나는 그분의 번역을
몇 번 보았기에 실력있는 분이라고 알고 있고 아마 번역도 잘 되지 않았을까 싶다.
다만, 한국어 번역본 제목에 뜬금없이 '미친척 하고' 라는 표현을 붙여둔게
마음에 걸린다.
책이란게 눈에 띄어야 팔리는 것이다보니 그런 문구로 소비자의 눈길을 끌고 싶었겠지만
제이콥스씨가 1년간의 삶에 도전한 건 사실 글 말미에 가보면(난 미리 가봤다)
꼭 미친척한 건 아니다.
차라리 그걸 뺐으면 제이콥스씨의 진심이 더 잘 반영되었을텐데
이 제목때문에 저자의 노력이 단순한 객기에 의한 것이라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판사에서 그런 것인지, 번역자가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팔겠다는 욕심때문에 과유불급의 사태에 이르기 쉽다.
한동안 이 책에서 손을 떼기 어려울듯 싶다.
문체나 문장 자체도 아주 쉬운 까닭에 실력있는 고등학생이나
원서에 자주 접한 중급 이상의 수준이라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투자 시간 대비 소득이 큰 책임에는 틀림없다.
준비물 : PDA형 전자사전. 휴대폰형 전자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