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성일이가 한국에 들어왔다.
아내의 응원으로 힘을 내서 성일이를 픽업해서 상계동 집까지 바래다 주고
간 김에 편찮으시다는 어머님 뵙고 왔다.
다행히, 정말 다행히도
어머님께서는 비록 뇌경색이긴 하지만
가까인 계신 성일이 제수씨 덕분에 큰 일 없이 움직이시는 것과
말씀하시는 것 모두 무리가 없으셨다.
친구의 일을 내 잡스러운 글에 담는 것이 미안한 마음 없지 않지만
오늘 아버님을 뵙고 나름의 감회가 커서 이 글을 적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성일이는 대략 2년 전쯤에 아버님께서 간경화로 쓰러지시는 바람에
많이 놀란 적이 있다. 나도 그 때 일이 조금 기억이 난다.
다행히도 아버님께서는 최근에 일하시면서 지내실 정도로 많이 안정되셨다.
그런데 이번에 어머님께서 뇌경색으로 쓰러지시자
드디어 자식들이 더는 일하지 마시라고 강권하고 또 강권해서
40여년을 이어오신 세탁소 일을 그만두기로 하셨다는 말을 들었다.
말이 40여년이지
사람의 일생을 대략 80으로 놓고 보면
절반을 세탁소 하나만 운영해오신 분이다.
장인이란, 이런 아버님을 두고 장인이라고 할만하다.
각각의 가정사 내막이야 알길이 없다.
배운 일이 세탁일이라면 그것을 업으로 삼아 반평생을 그 일에
바쳐온 아버님의 삶이 당연지사로 여겨질수도 있다.
하지만
자식들이 우기다시피해서 그만 두게 만든 당신의 평생의 일...
40여년을 한결같이 손님이 오면 일어서 나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그들과 함께 삶을 이어오신 습관이란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오늘 세탁소 안으로 들어가는데 보통 집보다는 조금 높은 천정에
손님들이 맡겨놓은 옷들이 세탁되어 걸려있었다.
얼핏 처음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천정에 매어달린 옷들이
내 키보다 낮게 걸려 있어서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갔다.
그렇게 인사를 여쭙고 어머님 상태를 확인하고
안심하고 있는데 누군가 손님이 들어왔다.
아버님은 습관처럼 또 일어나셔서
손님을 맞으러 나가셨다.
그 때 내가 들어오면서 머리에 걸려 허리를 숙이지 않으면 안되었던
그 옷가지들이 아버님 키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맞는 것이 아닌가.
당연히 아버님은 고개를 숙일 필요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버님 키가 좀 작은 것이었다.
무언가에 딱 맞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내게는 불편했고 걸리적거리는 옷가지들이겠지만
아버님께는 고개를 들고 아무 거리낌없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아버님만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새로운 발견이랄것까지는 없지만 그렇게 걸려있는 옷들과
아버님의 키와 닳아있던 문지방 모두가
그렇게 딱 맞을수가 없었다.
마음같아서는 하시고자 하는 일을 돌아가시는 그 날까지
하시게 두는 것이 어찌보면 참 효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멀리 타국에 나가 부모 공양을 제대로 못한다는 자격지심이
있는 맏이 성일이의 입장은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어머님이 뇌경색으로 며칠 동안 작은 아들네에서
간병을 받는 동안 아버님은 어머님의 빈자리게 너무 크게
여겨지셨나보다.
제수씨 말씀에 진지를 드시다가도 전화를 하시고
목이 메이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40여년을 살아오신 것이다.
그 말을 듣고 계시던 어머님도 눈이 붉게 충혈되시는 것이었다.
삶이란 어느 한 순간에 의미를 두고 사는 것은 아니리라.
살아온만큼,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할만큼을
인간은 추억하며, 그리고 꿈꾸며 살아가는 것이다.
지나온 40여년의 삶이 아버님의 기억속에서 책을 쓸만큼 의미있는 것들로
논리적으로 정리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긴 세월 앉았던 의자와 손때묻은 스팀다리미, 그리고 옷가지들을
내릴때 쓰던 장대고리 같은데에 시각적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비록 나의 부모가 아니고
생면부지 처음 뵙는 한 다리 건너 부모님이지만
40여년을 한결같이 해오신 일을 어느날 마지못해 그만두어야하는
그 허전함을 간접적으로나마 알겠기에
내 생각에,
성일이는 아주 진지하게, 그리고 오랫동안
인내심을 가지고 그 마음의 허탈함과 상실감을 정성껏 보듬어드려야 할것이다.
내가 너무 관찰자의 입장은 아니었나
부모님을 뵙고 난 마음의 느낌을 경솔하게 글로 표현하려한건 아닌가
하는 후회가 없지 않다.
그러나 나 역시 나이가 먹어가고 시간이 지나가면서
오늘 하루 느끼고 깨달은 바를 다시 찾지 못할 것이기에
한 순간의 감흥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친구지만
어머니를 걱정하며 잘 웃지도 못하는 성일이를,
운전하는 와중에 힐끗 힐끗 곁눈질도 보았을때
벼밭 쭉정이난듯 샌 머리가 나 있는 것을 보고
이제 너도 나도 나이 먹어가며 중년을 넘어서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두 분 부모님을 뵙고 나니 성일이가 오늘 겪은 일이
내가 곧 겪을 일이라는 것이 새삼스럽게 가깝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