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어느날 갑자기 술집이 들어섰다.
사는 환경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은 필설이 필요없는 것.
그동안 나름 조용하던 동네에 어느날 부터인가 새벽까지 고성이 오가고
경찰차가 왔다갔다 하는 등의 혼란스런 날들이 잦아졌다.
술을 먹는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변명이 없을까마는
그래도 술먹은 후의 모양새가 양반인 사람이 있고
천박한 광인의 모습을 한 사람도 있다.
몇 주 간을 참은 일이었다.
그러나 드디어 그저께 새벽엔 일이 터졌다.
취객 한 사람이 동네 어느집 앞에서 노상 방뇨를 한 것이다.
그것도 그 집 앞 정면 유리에 대고서.
그 전에 이미 시끄러운 나머지 잠을 못이룬 그 집 아주머니가
2층 베란다에서 내다보다가 결국 이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취객이 말 잘들으면 이미 양반 아닌가.
파출소에 신고를 하고 경찰들이 와서 연행을 해가는 와중에
그 술집 주인 아주머니가 나왔다.
그간, 술집이 생긴 것 자체가 못마땅해서
누가 저렇게 동네 한가운데에다가 술집을 차려놓고
애들도 많이 지나다니는데 저렇게 하나 속상한 마음이었기에
누군가 하고 살펴보니 내가 잘 아는 어느 쌍둥이 딸들있는 집
아주머니였다.
신세 한탄이란것이 한도 끝도 없는 것이지만
이 아주머니의 신세란 참 옆에서 보기에도 처절할 정도였다.
쌍둥이 딸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무능한 남편을 그래도 지아비랍시고 공경하면서
가장이나 다름 없이 손에 안대본 일이 없게 그렇게 억척스럽게
사는 아주머니란건 온 동네가 다 아는 사실이다.
별별 일을 다 해가면서 노력하는데도 여전히 그 집은
그렇게 형편이 펴지 못하고 아이들은 점점 더 자라갔다.
우리 학원에도 꽤 오랜 기간 다녔고 아이들 원비가 간혹 밀릴때마다
아내는 그 집 어려우니 좀 기다리자고 해서 몇 번식 미루어주곤 했지만
한 푼도 갚지 않은 것이 없다.
그렇게 어렵지만 동네에서 고개 숙이고 다닐만한 일을 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아주머니였다.
그런 아주머니가 술집을 한다.
이것은 나에게 아픔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새벽에 부신 눈으로 그 아주머니란걸 알고는
다시 들어와 누웠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남의 일에 관심이 많아서가 아니다.
사람이 가난의 끝에 서서, 과연 어떤 삶의 모습을 선택해야
옳은가를 고민해야했기 때문이다.
나역시 삶의 끝자락에 설수 있다.
아니, 심지어 그럴뻔도 했다. 그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이들과 아내를 생각지 않고 저렇게 직업의 마지막 자리라고 하는 술집을
할 수도 있을까.
나야 뭐 술을 먹을 줄도 모르고 먹지도 않으니 술 장사를 한들
며칠이나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 키우면서 술집은 아니다라고 하기엔 저 아주머니의
삶이 참 기구한 것이다.
그 일이 있고난 후로
그 술집이 며칠 째 잠잠하고 늦은 밤이 되어서도 불빛이 꺼져있는
경우가 잦았다.
나는 솔직히 몇 주 동안이나 그 술집을 보고 손가락질을 하며
동네에 애들 많이 다니는 길에 저런 술집을 차리다니 민원이나 할까보다 하고
생각도 안해본 것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동네에서는 다 아는 까칠쟁이인
나의 공격에 문을 닫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술집의 주인이 그 아주머니라는 것을 안 이상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단순한 안면 이전에 그녀의 삶을 읽어온 이유로.
사는 환경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은 필설이 필요없는 것.
그동안 나름 조용하던 동네에 어느날 부터인가 새벽까지 고성이 오가고
경찰차가 왔다갔다 하는 등의 혼란스런 날들이 잦아졌다.
술을 먹는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변명이 없을까마는
그래도 술먹은 후의 모양새가 양반인 사람이 있고
천박한 광인의 모습을 한 사람도 있다.
몇 주 간을 참은 일이었다.
그러나 드디어 그저께 새벽엔 일이 터졌다.
취객 한 사람이 동네 어느집 앞에서 노상 방뇨를 한 것이다.
그것도 그 집 앞 정면 유리에 대고서.
그 전에 이미 시끄러운 나머지 잠을 못이룬 그 집 아주머니가
2층 베란다에서 내다보다가 결국 이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취객이 말 잘들으면 이미 양반 아닌가.
파출소에 신고를 하고 경찰들이 와서 연행을 해가는 와중에
그 술집 주인 아주머니가 나왔다.
그간, 술집이 생긴 것 자체가 못마땅해서
누가 저렇게 동네 한가운데에다가 술집을 차려놓고
애들도 많이 지나다니는데 저렇게 하나 속상한 마음이었기에
누군가 하고 살펴보니 내가 잘 아는 어느 쌍둥이 딸들있는 집
아주머니였다.
신세 한탄이란것이 한도 끝도 없는 것이지만
이 아주머니의 신세란 참 옆에서 보기에도 처절할 정도였다.
쌍둥이 딸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무능한 남편을 그래도 지아비랍시고 공경하면서
가장이나 다름 없이 손에 안대본 일이 없게 그렇게 억척스럽게
사는 아주머니란건 온 동네가 다 아는 사실이다.
별별 일을 다 해가면서 노력하는데도 여전히 그 집은
그렇게 형편이 펴지 못하고 아이들은 점점 더 자라갔다.
우리 학원에도 꽤 오랜 기간 다녔고 아이들 원비가 간혹 밀릴때마다
아내는 그 집 어려우니 좀 기다리자고 해서 몇 번식 미루어주곤 했지만
한 푼도 갚지 않은 것이 없다.
그렇게 어렵지만 동네에서 고개 숙이고 다닐만한 일을 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아주머니였다.
그런 아주머니가 술집을 한다.
이것은 나에게 아픔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새벽에 부신 눈으로 그 아주머니란걸 알고는
다시 들어와 누웠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남의 일에 관심이 많아서가 아니다.
사람이 가난의 끝에 서서, 과연 어떤 삶의 모습을 선택해야
옳은가를 고민해야했기 때문이다.
나역시 삶의 끝자락에 설수 있다.
아니, 심지어 그럴뻔도 했다. 그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이들과 아내를 생각지 않고 저렇게 직업의 마지막 자리라고 하는 술집을
할 수도 있을까.
나야 뭐 술을 먹을 줄도 모르고 먹지도 않으니 술 장사를 한들
며칠이나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 키우면서 술집은 아니다라고 하기엔 저 아주머니의
삶이 참 기구한 것이다.
그 일이 있고난 후로
그 술집이 며칠 째 잠잠하고 늦은 밤이 되어서도 불빛이 꺼져있는
경우가 잦았다.
나는 솔직히 몇 주 동안이나 그 술집을 보고 손가락질을 하며
동네에 애들 많이 다니는 길에 저런 술집을 차리다니 민원이나 할까보다 하고
생각도 안해본 것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동네에서는 다 아는 까칠쟁이인
나의 공격에 문을 닫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술집의 주인이 그 아주머니라는 것을 안 이상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단순한 안면 이전에 그녀의 삶을 읽어온 이유로.